그대 늙어 백발이 성성하고 잠이 가득해
난롯가에서 꾸벅꾸벅 졸거든, 이 책을 꺼내 들고
천천히 읽으시기를, 그리고 한때 그대의 눈이 품었던
부드러운 눈빛과 그 깊은 그늘을 꿈꾸시기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대의 발랄하며 우아한 순간들을 사랑했으며
거짓된 혹은 진실된 애정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는지,
그러나 어떤 남자가 그대 속의 방황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그대의 변화하는 얼굴에 깃든 슬픔을 사랑했으니

그리고 타오르는 장작더미 옆에서 몸을 구부려
약간 슬프게, 중얼거리시기를, 사랑이 어떻게 도망갔는지
그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이리저리 거닐며
그의 얼굴을 별무리 속에 감추리라.

▲ 엄계옥 시인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가 이십대 초반이었다. 청춘에 그려보는 늙음은 석탄불이 이글거리는 난로 가에 앉아 한손엔 책을 들고 얼굴엔 세월의 편자를 들인 편안한 모습이었다. ‘가난하여 가진 것이라곤’ 평범한 꿈뿐이라서 꾼 몽상이라 여겼다. 꿈은 소박할수록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보존되는 걸까. 지금 다시 읽는 예이츠 시에 젊은 날 꿈이 그대로 실현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짝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관념적이고 몽상적인 감성과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혼이 시킨 짓이니, 아일랜드가 낳은 대시인도 마찬가지였다. 모드 곤에게 빠져 바친 헌시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담고 있다. ‘그대속의 방황하는 영혼을 사랑’한 이는 오직 자신뿐이라는 착각, 옛날 꿈 곁에서 꾸벅꾸벅 졸며 읽는 시는 평화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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