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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인물로 읽는 울산유사
울산 야당인사들 ‘삐라’사건 주모자로 몰려 갖은 고초[인물로 읽는 울산유사(242)] - ‘인물로 본 울산정치사’ (82)유신의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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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9  23: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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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정권은 북침에 대비한 국력의 조직화와 능률의 극대화를 위해 유신을 선포했다고 말했지만 이로 인해 많은 민주인사들이 피해를 입었다. 당시 박 정권은 학생들에게 유신 이념을 심기 위해 각 학교 마다 ‘유신 이념의 생활화’라는 간판을 달게 해 울산공고에도 이 간판이 걸렸다

안석호·이기택·장창수·심완구씨
김기홍·이일성·이영채·조덕구씨
정계석, 김형식씨와 부인 이순자씨
최형우 국회의원의 부인 원영일씨
최 의원의 동생 최형호씨 등
욕설·구타·물고문·전기고문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도


유신은 북침에 대비한 국력의 조직화와 능률의 극대화라는 미명하에 시작되었다.

국회해산 및 헌법 효력의 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유신을 발표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나는 조국 통일과 민족중흥의 제단 위에 모든 것을 바친 지가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민주국가의 건설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유신선포에 따른 피해도 컸는데 특히 울산은 그 피해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0월 유신이 선포된 1972년 10월17일 대부분의 국민들은 유신선포가 해방 후 우리들이 소중히 키워왔던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려는 쿠데타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울산의 야당 인사들은 이를 알고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

이날 신민당 울산지구당 사무실에서는 정계석 부위원장, 안석호 총무부장, 이일성 선전부장, 장창수씨 그리고 당시 최형우 국회의원의 동생 최형호씨가 국정감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때 이들은 박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 유신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인 김기홍씨가 타계하기 전 유신때 당한 고문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이 뉴스를 본 이일성 선전부장은 벽에 걸려 있던 흑판에 ‘민주주의 조종이 울렸다, 자유여 너를 통곡한다’는 구호를 써 유신을 규탄했다. 이때만 해도 이 부장 스스로 이 글이 자신에게 엄청난 시련을 가져다 줄 줄은 몰랐다.

오후가 되어 울산경찰서에서 형사가 와 유신선포로 정당 활동이 금지되었다면서 당 간판을 떼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당원들이 항의해 일단 그대로 돌아갔다.

이후 옥교동 유미빌딩 인근에 ‘박정희는 미쳤다’와 ‘군부는 썩었다’라는 삐라가 뿌려졌는데 계엄군은 이 사건을 울산야당 인사들이 주도했다면서 이들에 대한 체포에 들어갔다.

계엄군은 먼저 당사를 급습해 안석호, 최형호, 이기택, 장창수씨 등 야당 인사들을 체포한 후 바로 옥동 경비사령부로 연행했다.

이후 얼마 있지 않아 최형우 의원은 서울에서 구금되었고 심완구 조직부장 역시 자신이 운영했던 서울 무교동 불고기집에서 연행되어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울산에서는 계엄군들이 삐라사건의 범인을 밝힌다면서 당원들을 고문했다. 계엄군은 도망간 정계석, 이일성, 이영채, 김형식씨의 행방을 밝힐 것을 강요하면서 무자비한 고문을 했다. 계엄군은 남자들만 연행한 것이 아니었다. 이순자씨의 경우 남편 김형식씨가 사전에 도피하는 바람에 대신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경비사령부로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다.

당시 경비사령부에는 울산서 악명이 높았던 경찰서, 보안대, 중앙정보부 고문 팀이 합류해 있었다.

이 때 고문을 받은 후 평생 안면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돌아간 김기홍씨의 증언이다.

“처음 조사실로 들어서니 안석호씨가 몽둥이를 맞고 있었고 다른 동지들도 이유 없이 조사원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것을 보고 큰 일이 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더욱 놀란 것은 최형우 의원의 동생 형호의 모습이었습니다. 형호는 시퍼런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몸 전체가 피투성이었습니다. 저는 국회의원 동생을 저렇게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니 우리 모두가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도 군복을 주면서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게 하더니 두 명의 군인이 양쪽에서 얼굴과 다리, 허벅지를 걷어차면서 무려 3시간을 구타한 후 삐라를 뿌린 사람이 누구냐고 밝히라고 강요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김형식씨의 부인 이순자씨도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고문을 했는데 조사원이 남편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밝히라고 해도 입을 열지 않자 추운 시멘트 바닥에 놓고 매질과 전기고문을 했습니다.”

심문은 울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당원들 대부분이 한 달 후 부산보안사로 다시 넘겨졌다. 부산보안사 역시 울산 못잖게 악행을 했다. 보안사 대원들은 처음부터 당원들에게 “울산에서는 살아왔지만 이곳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다시는 제 발로 걸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심문에 임하라”고 겁을 주었다. 부산보안사는 한술 더 떠 이들의 행동을 북한 간첩들과 연계하려고 했다.

이무렵에는 서울로 도피했던 이일성, 이영채, 김형식도 잡혀와 이곳에서 심문을 함께 받았다. 이곳에는 이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이일성, 이영채를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최 의원의 부인 원영일 여사 그리고 심완구씨도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이곳에 이감되었다. 다음은 원 여사의 증언이다.

“부산보안사에서는 정 수사관이라는 자가 나를 담당했는데 인간 이하의 짐승같은 짓을 했습니다. 여자인 나한테 마구 욕지거리를 하는 등 형편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당원들은 그 때 울산경찰서에서 파견 나온 수사관들로부터 심문을 받았습니다. 당시 울산경찰서장은 백모씨고 정보과장은 안모씨 그리고 정보 2계장은 김모씨였습니다. 심문이 끝나고 그들은 나를 시멘트 바닥에 천막을 친 곳에 쳐 넣었는데 선심이라도 쓰듯 담요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 때는 초겨울이라 추워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9명이나 되는 울산동지들이 모두 이웃 방에 그렇게 있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칸막이 밑으로 동지들의 모습들이 보였는데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이들을 보니 눈물이 막 쏟아졌지만 내가 울면 모두 따라서 울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견디느라고 아주 힘들었습니다. 한 보름 지나니까 나와 심완구씨만 석방을 시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 때 나는 동지들을 다 내 보내어 주지 않으면 나도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동지들이 마음이 급해 나를 달래더라고요. 그들은 심씨와 나라도 빨리 나아가 자신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또 이 일을 수습할 수 있다면서 우리들에게 먼저 나가라고 해 동지들을 두고 둘이 먼저 나오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이 때 최 의원 역시 서울에서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특히 계엄군은 최 의원을 이 사건의 주모자로 보고 엄청난 고문을 했다. 당시 최 의원이 받았던 물고문이 얼마나 잔인했던지 그는 나중에 9대 국회에 등원하는 날 신상발언을 통해 “소를 물 먹인 사람들은 감옥에 가는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고문을 하면서 억지로 물을 먹인 인간들을 처벌을 받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최 의원이 이 발언을 할 때 우리 사회에서는 소의 무게가 많이 나가도록 억지로 물을 먹인 사람들이 여러 명 구속되었다.

중앙정보부 역시 심문을 하면서 당원들에게 심하게 굴었다. 이 때 중정부장과 비서실장은 공교롭게도 울산 출신의 이후락씨와 이장우씨였다. 그러나 당원들이 수사를 받기위해 중정에 넘겨지면 수사관들은 오히려 “동향인 부장님과 실장님을 생각해서라도 감히 울산 출신인 너희들이 어떻게 유신에 반대를 할 수 있느냐”면서 더욱 혹독한 고문을 했다.

결국 이들은 보통군법회의에서 포고령 1호 1항 위반으로 김기홍, 이일성, 이영채, 장창수, 최형호, 이기택, 안석호, 조덕구씨는 징역 3년, 정계석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들은 고등군법회의에서 감형이 되었지만 김기홍씨의 경우 서대문에서 안양교도소까지 이감되어 9대 총선 때까지 옥중생활을 했다.

출옥 후에도 이들 대부분은 또 다른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많은 인사들이 수사과정에서 겪은 고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기도 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이 생겨나면서 2000년 이들 대부분이 명예회복과 보상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민주화 운동자들이라는 명예회복은 했지만 보상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옥중 생활을 가장 오랫동안 했던 김기홍씨는 눈을 감을 때까지 최형우 의원에게 섭섭하게 생각한 것이 있다. 그것은 최 의원이 삐라사건이 계엄군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히지 않은 것이었다. 김씨는 최 의원이 김영삼 정권아래서 내무부 장관이 되었을 때 유신으로 고생한 울산 정치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삐라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면서 여러 번 그를 방문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의 실세였던 최 의원이 이를 밝히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아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진실여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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