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욱 목사

세상에서 국어가 가장 쉬웠다. 시험 치는 날이 와도 국어는 공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은 만점에 가까웠고 늘 최상위 권을 유지했다. 국어 성적이 나쁜 아이들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그 전에도, 그 후로도 국어 공부는 한 적이 없었다.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수없는 레포트를 써내야하는 대학 시절에도 국어는 문제없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해도 국어 공부는 여전히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하나 나의 국어 실력에 제동을 거는 사람이 없었고, 나 또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국어는 굳이 배워야 필요가 없는 일반 상식에 불과한 가치 없는 학문이었다. 한글에 대한 무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서평가로 활동하면서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신문사와 출판사의 부탁으로 공적인 글을 써야할 일이 늘어났다. 그동안 ‘국어가 가장 쉬웠다.’가 나의 모토였는데 첫 문장부터 걸리기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띄어쓰기였다. 그동안 간과(看過)했던 수많은 문법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몇 쪽이 되는 글을 써 놓고도 글을 보내지 못하고 하루 종일 퇴고에 매달렸다. 퇴고는 문장을 수정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띄어쓰기와 문장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 문장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너야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때서야 국어가 얼마나 어렵고 난해한 것인지 깨달았다. 개인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독해가 아닌 띄어쓰기였다. 동일한 글자라도 문장 속에서 사용된 용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글자였고, 띄어쓰기 역시 달랐다. 예를 들어 ‘만큼’이란 글자를 보자. 문장 속에서 ‘너만큼 크다’는 조사로 ‘너’와 붙여 사용한다. 하지만 ‘공부하는 만큼’의 경우는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그때서야 내가 알고 있던 국어는 독해를 위한 읽는 국어였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개진(開陳)하는 쓰기의 국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쓰기의 국어는 읽기의 국어와 글을 대하는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읽기의 국어는 수용과 이해의 문제이지만 쓰기의 국어는 사유와 발설의 차원을 넘어 문법과 맞춤법, 단어에 대한 적법(適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필자의 경우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제대로 알지 못해 글을 맞춤법 프로그램을 통해 수정하고, 그래도 잡아내지 못한 오류는 인터넷 사전까지 검색하며 수정해야 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에 배웠던 맞춤법이 바뀌면서 어려움은 더해졌다. 그때서야 국어가 얼마나 어려운지, 맞춤법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무시했던 국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배웠던 교과서를 찾았고, 문법과 띄어쓰기 책들을 찾아가면 배워 나갔다. 이 책은 그동안의 고민과 걱정을 일거(一擧)에 해결해준 책이다.

 

책 제목은 <국어문법 언어규법 공공언어 강의>라고 하지만 사전처럼 필요한 단어를 찾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책이다. 첫째마당은 ‘우리말과 우리글’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간다. 둘째 마당은 ‘공공언어 바로쓰기’를 통해 바른 말은 공적이어야 하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끌어야 함을 권면한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말과 글을 보존하는 일은 무엇보다 공공기관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이 먼저 우리말과 글을 훼손하는 데 앞장서는 것처럼 보인다.”(39쪽)

실제로 공공기관의 언어들은 난해하고 해독이 불가능한 문장도 적지 않다. 1979년 영국에서 행정용어가 어려워 난방보조금을 신청하지 못해 죽은 이야기는 공공기관이 바르고 쉬운 말을 사용해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도 ‘쉬운 우리만 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전 앨 고어 부통령이 말한 ‘쉬운 언어는 시민이 누릴 권리’(39쪽)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저자는 바른 국어사용을 위해 공공기관의 문서는 ‘의무 조항’이어야하고, ‘공공기관에 공공언어 사용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 국어책임관’을 두어야하고, 공무원의 승진 시험에 국어사용 능력을 넣어야 한다고 제안한다.(41쪽) 저자의 제안에 격하게 동의한다. 필자의 경우도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맞춤법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혼자만의 변명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그동안 바른 국어가 무엇인지, 쓰기 위한 국어를 배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셋째 마당부터 여덟째 마당까지는 일상 소에서 틀리기 쉬운 글을 다룬다. 필자는 셋째 마당의 ‘틀리기 쉬운 한글 맞춤법’과 넷째 마당의 ‘틀리기 쉬운 띄어쓰기’를 유심히 읽었다. 저자는 한글 맞춤법에서 필자가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아니면 도무지 기억나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맞춤법 제2항은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이다. 이렇게 쉬운 사실 하나만 접해도 글쓰기는 한결 수월해 진다. 문법으로 넘어가면 필자가 가장 난감해 하는 띄어쓰기가 나온다. 바로 조사와 의존 명사는 띄어쓰기가 다르다. 예를 들어 ‘너만큼’은 조사로 붙여 쓰고, ‘공부하는 만큼’은 의존명사로 띄어 쓴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도 그동안 얼마나 성의 없이 한글을 대했는지 미안하고 안타깝다.

아홉째 마당은 ‘자료’를 첨부했다. 이곳에는 ‘띄어쓰기 규정’과 ‘표준 발음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문장 부호’ ‘행정 용어 순화어 목록’이 담겨있다. 역시 이곳에서 필자가 어려워하는 ‘띄어쓰기 규정’을 주의해서 읽었다. 조사는 그 앞 말에 붙여 쓴다. ‘꽃이 피다.’이지 ‘꽃 이 피다.’는 아니다. 의존 명사는 역시 띄어 쓴다. ‘아는 것이 힘이다.’이지 ‘아는것이 힘이다.’는 아니다. 보조용언의 경우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 예를 들어 ‘불이 꺼져 간다.’가 원칙이고, ‘불이 꺼져간다.’는 허용한다. “다만, 앞 말에 조사가 붙거나 앞 말이 합성 동사인 경우, 그리고 중간에 조사가 들어갈 적에는 그 뒤에 오는 보조용언은 띄어 쓴다.”(335쪽) 모호하고 난해한 부분도 원칙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은 글을 처음 배울 때 익혀야 힘들지 않다.

우리말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우리말을 제대로 진지하게 대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읽을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그러나 바로 글을 쓰고 사용하는 이들은 바로 알아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은 더욱 그래야 한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틀리기 쉽고 모호했던 우리말에 대한 다양한 원칙들을 제공해 준다. 특히 문교부에서 공포한 <외래어 표기법> 중에서 틀리기 쉬운 외래어를 제공하고 있다. 놀랐던 것은 천주교를 외래어로 ‘카톨릭’이 아니라 ‘가톨릭’인 것이다. 이제까지 영어 발음상 카톨릭으로 계속 틀리게 적어왔다. 레크레이션도 ‘레크리에이션’이고, 헷갈렸던 ‘매니아’는 ‘마니아’가 바른 표기다.

글을 적고 보니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참회록에 가깝다. 이 글에도 얼마나 많은 오타와 잘못된 맞춤법이 있을까 덜컥 겁이 난다. 그동안 말로만 우리글을 사랑한다고 한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온다. 저자는 종종 필자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잘 읽었다며 안부 문자를 보내온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주의하지 않고 올린 글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오타는 얼마나 많으며,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데 그냥 ‘글을 참 잘 쓰네요.’라고 칭찬 일색이다. 책을 읽고 나이 얼굴이 화끈 거린다. 그동안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 잘난 맛에 살았다. 두 번이나 저자를 찾아가 식사를 했지만 아직 한 번도 글에 대한 지적을 한 적이 없다.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이 책 속 글 전반에 그래도 드러나 있다. 우리글 다시 배워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서평 정현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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