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판결이라도 100% 승복은 없어
반대의견은 적법한 절차내에서 표출해
성숙한 법치주의가 자리잡도록 해야

▲ 정다주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대통령이 임기 중에 파면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모든 국민이 제각기 다른 마음으로 사안을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법관인 필자 역시 재판과 법원의 본질과 관련하여 나름의 관점에서 느낀 바가 있어 말씀드리고자 한다.

헌재의 결정 이후 많은 언론기관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국민 10명 중 9명이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밝혔고 이는 압도적인 승복률’이라 보도했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칸타코리아가 SBS의 의뢰로 3. 11.~12.에 조사한 결과임, 상세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헌재 결정이 ‘잘한 결정이다’라는 의견이 85.1%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언뜻 대다수 국민이 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승복’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사전적 의미는 ‘납득하여 따른다’는 것이다. 그럼 자기 뜻을 그대로 관철시킨 사람이 결과에 따르는 것도 승복일까. 아니다. 진정한 승복이란 자기 뜻과 다른 결정을 받은 사람이 이를 수용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다시 여론조사 결과로 돌아가서, 헌재 결정이 ‘잘못한 결정이다’라는 의견을 낸 사람들의 승복률을 보자. ‘승복하겠다’고 밝힌 사람이 53.8%, ‘승복하지 않겠다’고 밝힌 사람이 40.5%다. 그렇다면 필자가 정의한 ‘진정한 승복’을 한 사람의 비율은 냉정하게 얘기해서 절반이 조금 넘을 뿐이다. 헌재 결정 승복률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이다.

필자는 특정 정치 사안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특정 정파의 관점에 치우쳐서 입장을 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님 역시 잘 아시리라 믿는다. 법원의 판결을 포함한 사법기관의 결정에 대하여 국민이 ‘납득하고 따르는’ 정도에 관하여,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전국적인 사건을 통하여 일례를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헌법적 사안에 관한 한 최종 사법기관인 헌재에 의한 것이고 절차도 단심(單審)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승복률이 약 절반에 그친다면, 일반 민·형사사건은 어떻겠는가. 민사사건의 예를 들면 둘 중 한쪽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데, 지는 쪽의 상당수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그리하여 재판 당사자 중 절반에 가까운 수가 법원을 불신하거나 심지어 원망할 가능성이 높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 법률문화 안에서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기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환경에 답답함을 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상황이 법원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오히려 법관이 승복하여야 할 현실임을, 법관들 스스로 잘 알고 있고 겸허한 마음으로 이를 존중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자 함이다.

사법기관의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는 것만이 법치주의인 것은 아니다. 사법기관이 무오류라 할 수 없는데 어찌 모든 결정에 따를 수 있겠는가. 또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더라도 감정적으로 따르고 싶지 않은 것을 어쩌겠는가. 중요한 것은 가급적 승복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그리고 승복하지 않는 마음 역시 적법한 절차 내에서 표출하는 것이다. 그것이 수준 높은 법치주의의 모습이다.

성숙한 승복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 속에서 가능하다.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법원이 먼저 노력하여야함을, 또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장시간 동안 묵묵히 노력한 결과로서만 얻을 수 있음을, 법관들은 명심하면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국민들께서도 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법원과 법관들을 바라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정다주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