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문화관광해설사의 비망록-울산여지승람(25)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는 간월산과 신불산 등 영남알프스를 오르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경상일보 자료사진

아름다운 자연환경 배경으로
신불산~간월산 사이에 위치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개최로
산악영화제 메카로 발돋움
최신영화관람·클라이밍도 가능

인근에 작괘천·간월사지 등
산악관광 인프라 풍부하지만
빨치산 등 아픈 민족사 흔적도

인간의 접근은 고사하고 구름의 접근마저 쉽게 허락하지 않으면서 ‘하늘의 절대군주’란 별칭을 가진 파키스탄의 고봉(孤峰) 카라코롬. 그 눈 덮인 정상을 불굴의 의지로 정복하고 베이스캠프를 향해 하산하던 두 친구, 테일러와 해럴드. 눈을 몰아오는 악천후 속에서 불행하게도 해럴드는 그만 다리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만다. 깎아지른 듯한 경사로 인해 제 한 몸 버티기도 힘든 절체절명의 상황, 그런 상황에서 자신까지 책임지며 내려가려는 친구 테일러를, 해럴드는 닥쳐오는 죽음을 예감하고 홀로 내려가도록 설득한다. 베이스캠프와의 통신마저 끊어져 버린 극한 고도 2만8000피트. 테일러는 부상당한 헤럴드와 함께 살아남기 힘들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이 홀로 하산을 결행한다. 하지만 내려오는 도중 테일러는 이미 얼어 숨져있던 동료의 시신을 발견하고, 숨진 그 동료의 장비를 가지고 다시 헤럴드 곁으로 향한다. 죽어가는 해럴드를 데리고 하산을 강행하나, 산은 이들의 내려감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몇 번씩이나 생사가 갈리는 위기가 닥치고 난 뒤 마침내 장대한 산맥에 깔려있는 거대한 빙하, 그 빙하사이로 눈이 부시도록 내리비치는 햇살, 그 햇살사이로 설원을 가르는 구조 헬기의 금속음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한 인간의 변화를 통해 산의 위대함을 일깨우는 영화, 그리고 실화를 소재로 한 산악영화 ‘K2’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런데 이런 산악영화의 촬영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들이 고사를 많이 하는 영화가 산악영화라고 한다. ‘K2’의 감독은 이 위험성 때문에 처음에는 세트를 만들어 촬영하려 하였으나, 영화제작사측에서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실제 현장에서의 촬영이 좋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배우들이 4개월 동안 현장에서 산악훈련을 받은 후 영화촬영에 들어갔다는 후문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 연유로 이 영화는 산악영화 가운데서도 사실감이 뛰어난 수작(秀作)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런 산악영화를 테마로 한 ‘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곳이 바로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인 것이다.

작괘천을 깊숙이 따라 올라가다보면 도깨비도로를 지나, 통일신라말기 불교미술의 귀중한 연구 자료로 평가되는 보물 제 370호 석조여래좌상과 두 기(基)의 석탑이 남아있는 간월사지(澗月寺址)에 다다른다. 신라 진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세웠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폐사(廢寺)되었다가 그 후 1634년에 다시 세워졌다는 기록만 있을 뿐, 간월사(澗月寺)는 간 곳 없고 오직 금당지(金堂址) 등의 건물터와 축대, 주초석, 장대석만이 남아 적막함을 더해준다. 창건 당시에는 이웃 통도사와 그 규모가 견줄만했다고 하나, 지금은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선 신흥 숙박건물에 둘러싸인 형국이 마치 극락세존께서 십장홍진(十丈紅塵)에 갇힌 채 갈 곳 몰라 하시는 것 같아 들러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걸음을 조금 더 재촉하여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자, 간월산 계곡을 훑고 내려오는 한줄기 바람이 입장객을 바쁘게 맞이한다. 부는 바람에 깃발처럼 나부끼는 여러 편의 산악영화 포스터들이 가지런하게 일렬로 줄을 서 있는데, 그 펄럭거리는 사이로 ‘영남 알프스’라는 캘리그라피 글씨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복합웰컴센터다.

유럽의 알프스산맥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아름답다고 하는 곳 뒤에 붙는 대명사가 바로 ‘알프스’이다. 하지만 이 알프스는 아무 곳에나 붙는 이름은 아니라고 한다. 알프스의 본 고장 스위스의 루체른을 시작으로 일본 북알프스의 도야마, 중국 베이징 알프스의 허베이성, 뉴질랜드 서던 알프스의 퀸즈타운과 함께 대한민국 울주군에 위치한 영남알프스까지, 이렇게 알프스란 이름을 가진 산맥은 전 세계에 단 5곳이다. 그 가운데 하나로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이 영남 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 군(群)을 가리키는 곳으로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낙동강과 평행을 이루는 형세를 하고 있다. 또한 울산광역시를 비롯 경상북도 경주와 청도, 경상남도 밀양과 양산의 5개 시군에 걸쳐 넓게 형성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알프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장엄한 봉우리와 준수한 산줄기가 빚어내는 수려한 경관은 천혜의 자연이라 표현해도 결코 과하지 아니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가 자리한 이곳은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에 위치해 있어 영남알프스의 관문이라 일컫는 곳이다. 예부터 왕방재, 왕방골 등의 지명으로 불렸던 이곳은 봉우리만큼이나, 골짜기의 수만큼이나, 아름다운 절경(絶景)과 함께, 우리 민족사의 아픈 이야기를 곳곳에 숨기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산악테마전시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에 얽힌 이야기에서부터 빨치산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영남알프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귀로 듣고 눈으로 읽다보면 통로는 어느 듯 자연스레 1층 ‘알프스시네마’로 이어진다.

지난 해 9월30일,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이곳에서 개최됐다. 영화제는 성공적이었으며 이로 인해 국내 최초 국제산악영화제의 입지를 다지고, 울주군이 아시아 산악 영화의 성장 거점 역할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오는 9월에 이곳에서 열린다. 지난해에 비해 내용면에서도 더욱 풍성해지고 무엇보다 일반관객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영화의 편성이 늘어남과 함께 초청게스트의 수도 지난해 180명에서 240명으로 그 비중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이벤트도 함께 기획하고 있다는 얘기를 행사를 준비하는 사무국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으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영남알프스의 자연을 통한 산악관광에다 영화관람, 산악테마전시, 클라이밍을 넘어 세계적인 산악영화제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홍중표 자유기고가

센터 건물을 빠져나와 광장 옆에 설치되어있는 인공폭포를 바라보다, 내친걸음에 자연 속의 폭포를 찾아 나섰다. 간월산 산행 길을 따라 십분 채 안 되는 곳에 무위의 모습을 한 폭포가 나타났다. 33m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맑은 물줄기가 마치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려, 봄에는 무지개가 서리고, 겨울에는 고드름이 언다하여 폭포의 이름을 <홍류폭포>라 하였는데, 폭포의 이 물이 흘러내려가 작괘천을 이루니, 그 천(川)이 어찌 아니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되지 아니하겠는가? 홍류폭포가 있는 간월산을 내려오며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나’라는 질문에 대하여 ‘산이 거기 있어서’라는 대답으로 많이 알려진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의 명언을 떠올렸다.

우리는 왜 영남알프스에 오르는가? 에 대한 대답 또한 조지 말로리의 명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리라. 올라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가 바야흐로 세계적인 산악영화제의 본산(本山)으로 자리매김하는 날을 흐뭇한 마음으로 그려보던 중에 간월재에서 바람을 타고 마치 한 마리 새처럼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패러글라이딩이 보인다. 영남알프스가 지금 비상(飛上)을 하고 있다.

홍중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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