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뒷골목
번지 없는 주소(住所)엔들
어떠랴.
조그만 방이나 하나 얻고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숨바꼭질하던
어릴 적 그때와 같이
아무도 모르게
꼬옹 꽁 숨어 산들 어떠랴.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중략-

깊은 산 바위 틈
등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의지하며
순아 우리 단둘이 사자.

▲ 엄계옥 시인

시 노래다. 김억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모더니즘과 자연을 가미한 시인의 시다. 순이라는 이름은 참 경겹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추억일 수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다. ‘사랑’은 가수 최헌이 부른 ‘순아’의 모태다. 인간은 술에만 만취하는 게 아니다. 향수에도 마취되는 게 청춘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 시 노래는 유년을 함께 했다. 칠십년대 문화의 향유층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그만 방이 있었고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가 라디오였던 시절, 기타 선율에 실린 허스키한 목소리는 새장 속에 갇힌 청춘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그 노래는 미지의 사랑이었고 창문 너머에 있는 꿈이었다. 2012년 가을, 최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열여섯 순아도 함께 따라 가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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