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하 기관장 퇴직공무원 일색
전문성 가진 인재유입 취지 무색
좋은 인재 옳게 쓰는 도시 만들어야

▲ 정명숙 논설실장

울산은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표피적 변화가 아니라 체질을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 다방면에서 동시에 달라지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변화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없다.

변화는 사람이 만든다. 울산시가 산하기관장을 공개모집하고자 했던 것도 분명 인재 영입을 통한 변화가 목표였다. 평범한 사고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이 아닌 특정분야에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 유입됨으로써 맑은 강이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울산시 산하기관장 자리가 대부분 퇴임 공무원들로 채워지고 있다. 해묵은 ‘관피아’ 논쟁을 벌이려는 것은 아니다. 적법성을 따지자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100세 시대’에 은퇴 인력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채용된 개개인들이 역량 있는 공무원들이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문제는 전문성과 창의성이 필요한 자리까지 퇴임 공무원들에게 내주었다는데 있다. 어쩌다 한 자리라면 미처 적절한 인재를 구하지 못했나보다 하겠지만, 한둘이 아니다. 올 들어서만도 울산시여성가족개발원장,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 남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문화예술회관 관장 등 싹쓸이다. 다른 시·도의 공무원들도 아니고 전부 울산시 공무원들이다. 이들 기관뿐만 아니다. 시와 구·군이 출연한 기관들의 기관장도 대부분 퇴직 공무원들이다.

형식은 모두 공개모집이었다.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기껏 변화의 물꼬를 터놓고는 다시 틀어막아버린 꼴이다. 마치 ‘울산시는 아무런 변화를 원치 않습니다’라고 광고를 하는 것만 같다. 관리만 잘하면 되는 일부 기관은 공직자 출신들이 적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적 역량이나 창의적 사고가 절실한 기관들마저 울산지역 퇴직 공무원들에게 맡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수 십 년간 몸담아온 조직 안에서 상하전후좌우를 마치 ‘명경알’같이 꿰고 있는 그들이 무슨 변화를 시도하겠는가. 어떤 길이 안전한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길을 찾는 모험을 하지 않는 법이다.

외부 인력을 써봤지만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는 변명도 따라올 것이다. 퇴임 공무원이 아닌 인력을 써본 적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인재 영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역 내 특정인물을 뽑기 위한 형식적 공채를 하기도 했고, 실질적인 공채를 했지만 특출한 인재를 뽑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형식적 공채의 결과는 당연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공채에도 인재들이 몰리지 않는 이유는 곰곰 따져봐야 한다. 인재들이 욕심낼 만큼의 직급이나 연봉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겠는가. 특정 분야에 특출한 인재를 영입하려면 충분한 대우를 제안해야 한다. 김기현 시장은 지난 2016년 신년사에서 ‘울산의 재도약 및 퀀텀점프(Quantum jump·대약진)’를 목표로 내세웠다. 높이 뛰려면 천장이 높아야 한다. 천장을 공무원 키 높이에 맞춰 놓은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유입된 외부 인재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외부 인재라고 해서 ‘용빼는 재주’를 가진 것도, 매사에 전지전능한 것도 아니다. ‘1척 높이의 나무는 반드시 마디가 있고, 1촌 크기의 옥은 반드시 반점이 있다’고 했다.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과가 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배려도 뒤따라야 한다. ‘좋은 인재를 옳게 쓴다는 것이 알려지면 자연 인재들이 찾아오게 된다’고 했다. 인재 발굴에는 소홀하고, 찾아온 인재에게는 인색한 도시로 알려질까 걱정이다.

정명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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