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선영 울산대 교수·수학과

인종 차별이 여전했던 시기에, 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사 경쟁에서 한 몫 단단히 기여한 숨겨진 세 사람의 흑인여성을 그린 영화 ‘히든 피규어’가 개봉됐다. 냉전시대였던 1960년 선점한 사람이 룰을 정한다는 우주탐사경쟁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50대가 넘은 사람은 나사에서 발사되는 우주탐사 방송을 한 두 번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수학 영재인 ‘히든 피규어’의 주인공은 우주인 존 글렌이 타고 우주로 나갈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한다. 우주선이 지구를 떠난 후 우주공간에서 지구 주위를 일정한 속도로 돌다가 다시 지구로 귀환하여 목표된 지점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엔진을 점화해 가속도를 얻어야 하는데 어느 지점에서 얼마나 가속해야 되는지를 수학을 이용해 정확히 계산해내는 장면이 나온다. 가속도란 시간에 따른 속도의 변화량으로 뉴톤이 속도를 시간으로 미분한 것으로 표현했다. 인류 최초로 달 탐사를 한 아폴로 11호 발사 시 나사 기지국 맨 앞에 앉은 사람들은 수학자이다. 그들이 아폴로 11호의 궤도를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백인 여성 타이피스트 외에 유일한 여성이며 유일한 유색인으로 백인 남성들만의 그룹에서 일을 한다. 주어진 자료로 계산만 하던 그녀가 우주선 궤도를 직접 계산하기까지, 800m 떨어진 유색여성 전용 화장실을 종종 걸음으로 뛰어 다니며 일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클로오즈업 된다. 우주 탐사선을 쏘는 그 지성의 집단에 인간의 가장 본질적 죄악의 형태인 인종과 성에 대한 차별이 그대로 평행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할 정도다. 인간의 이성 판단의 오류 중 하나가 여러 사람이 같이 하면 그것이 오류라 하더라도 오류라고 인식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그런 것을 인식하면 그 조직은 참 복이 있는 조직이다.

어느 길이든 그 길을 간 최초의 사람이 있었다. 길을 만들며 길을 간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있는 것이다. 길이 없는 길을 가다보니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고 바위 때문에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 길은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길을 낸다. 그리고 길이 만들어 지기까지는 수많은 히든 피규어들이 있다.

장선영 울산대 교수·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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