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훈 소설 ‘전화앵’의 저자 전 KBS 울산방송국 PD

오는 7월 부분개통을 앞두고 있는 연장 16.9㎞의 옥동~농소간 도로에 붙일 이름이 현안이 되고 있다. 여러 이름이 거론되는 중에 울산출신 이예(李藝) 선생의 이름을 붙이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에는 인물 이름 붙은 길이 드물다. 타 도시에서 그 사례를 눈에 띄는 대로 찾아보니 전국에 200개가 넘는다. 서울에 손기정로 허준로 등 40여개, 세종특별시에 장욱진로 등 7개가 있으며, 특히 광주에는 금남로(정충신), 고봉로(기대승) 송강로(정철) 등 20개를 넘어선다. 외교관 이름으로는 이천시의 서희로 및 원주시의 조엄로도 있다. 울산에는 고복수길, 외솔큰길, 고헌로, 아산로의 4개가 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필자는 새 도로의 이름으로 이예로(李藝路)를 권하고 싶다. 울산 말응정(현 태화동)에서 태어난 이예(1373~1445)는 조선이 낳은 최고의 대일 외교관이며 문화인물이었다.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국력을 소진한 고려가 무너지고, 새로 들어선 조선에게 왜구 금제는 왕조의 사활이 걸린 중요 과제였다. 이 과업의 최일선에 섰던 인물이 이예였고, 이예는 각고의 노력 끝에 1443년(세종 25년) 대마도주와 계해약조를 맺었다. 그후 임진왜란까지 조선의 바다에서 왜구가 사라졌다.

이예는 5세기 초 신라 실성왕때 일본에 넘어가 버린 대마도를 우리 국토로 되찾으려 노력했다. 비록 당시 조정 중신들의 반대로 끝을 맺지 못했으나 그 경과는 이렇다. 1418년(세종 1년)에 대마도주 종정무(宗貞茂)가 사망하자 이예는 경차관(敬差官)으로 대마도에 파견되었다. 이예가 대마도에서 제례를 베풀고 부의를 넉넉히 하자, 종정무의 아들로서 새로이 대마도주가 된 도도웅와(종정성)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두 개의 천황가로 나뉘어 싸운 60년간 남북조 내전의 혼란이 가시지 않은 때였고, 대마도는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의지할 데를 찾던 도도웅와는 조선을 택했다. 이전에 통신관, 회례사 등으로 여러 차례 대마도를 내왕했던 이예의 설득으로, 도도웅와는 대마도를 조선 경상도의 한 지역으로 편입시키기로 결심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그대로 옮겨보자: ‘세종 1년(1419) 9월 20일 대마도 수호(도주) 도도웅와가 도이단도로를 보내어 예조판서에게 신서(信書)를 올려 항복하기를 빌었고, 인신(印信) 내리기를 청원했으며 토물(土物)도 헌납하였다’. 조선 조정은 이 청원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대신 중에 우의정 이원(李原) 등이 관리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극력 반대하자, 갓 즉위한 세종은 신료들의 뜻을 꺾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이때 세종은 “대마도민이 고작 몇만 명에 지나지 않는데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라고 신료들에게 되묻고 탄식했다. 그 때 세종이 대마도를 받아들였다면 이후 대마도는 영원히 우리 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예는 또한 각별한 효성의 인물이었다. 왕조실록에 의하면 이예는 8세때에 왜구에 잡혀간 어머니를 찾아 대마도와 일기도 등 일본의 여러 곳을 집집마다 수소문하고 다녔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났으니 모자는 저승에서나 다시 만났으리라. 이예의 사친 정신은 ‘이예로’를 달릴 모든 운전자들에게 효도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해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예로’는 과학정신의 길로 기억될 것이다. 그가 자전 물레방아와 판옥선을 일본에서 도입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과 유구국(오키나와) 등에 파견돼 왕래하던 중, 그들의 농업 중에 잘하는 점을 벤치마킹하고 무기류도 좋은 점을 도입했다. 뱃전이 높은 남만선을 보고 왜구의 단병 접전을 막을 배로 여겼고, 그들이 선재 이음에 쇠못을 쓰는 것을 본따 튼튼한 배를 만들도록 주청하니 마침내 판옥선이 생겨났다. 목재로 얼개를 이으면 8~9년이 한계인데 쇠못으로 이으면 20~30년을 간다고 이예는 설명했다. 그의 노력에 의한 판옥선이 없었다면 160년 후 임란 해전에서 충무공이 어찌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 외에도 이예는 화폐 사용과 사탕수수 재배를 건의하고 민간의 광물 채취를 허용하도록 건의했으니 이것은 개혁이었다. 이예는 신기술 개발로 미래 먹을거리 산업을 일으키는 울산이 모시고 배워야 할 인물이다. ‘이예로’는 울산뿐 아니라 한국의 미래 새 지평을 여는 도로가 될 것이다.

이양훈 소설 ‘전화앵’의 저자 전 KBS 울산방송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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