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륜부 남아있고 원위치 유지, 전체적인 외관 양호" 가치

▲ '경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 측면./문화재청 제공
▲ '경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 정면./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경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溪 池谷 第3寺地 三層]石塔)을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제1935호로 지정했다고 5일 밝혔다.

이 탑은 전탑형 석탑으로 8개의 커다란 사각 석재를 기단으로 구축하고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이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전탑(塼塔)은 흙으로 구운 작은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린 벽돌탑이다.

별다른 장엄 장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과는 다르다.

그 세부를 살펴보면, 7매의 석재로 이뤄진 지대석(地臺石, 바닥의 받침돌) 위에 8매의 기단석이 상·하 2단으로 나눠져 각각 4매씩 올라와 있다.

상층 기단석 위에는 3단의 탑신 받침이 있는데, 하단 모서리가 깨진 상태이다.

이 탑신 받침 위에 1매의 석재로 된 1층 탑신석이 올려 있고 그 위에 올린 옥개석 전각의 네 모서리에는 풍탁(風鐸)이 달려있던 구멍이 뚫려있다.

2층 탑신석 역시 1매의 돌로 이뤄졌으며, 3층 탑신은 2층 옥개석 낙수받침의 상단과 3층 옥개석의 하단이 맞닿아서 이어진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에 관한 문헌기록이 없어 삼층석탑이 언제 건립됐는지 확인할 만한 근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탑지 주변에서 ‘용(茸)’자명을 비롯한 9점의 명문와(名文瓦)가 출토돼 용장사(茸長寺)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용장사지(탑상곡 제1사지)에는 삼층석탑과 마애불좌상, 석불좌상이 전해오며, 그 일대에 여러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곡 제3사지에서 출토된 와당(瓦當)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로 미뤄 이곳의 사찰이 통일신라 9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와당(瓦當)은 기와의 막새나 내림새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부분이다.

석탑지 주변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조각과 백자 조각 등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사찰의 법등(法燈)이 이어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석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2000∼2001년 2차례 발굴조사 과정에서 흩어져 있던 석탑 부재를 수습해 2002년 복원한 것이다.

상륜부 부재는 재사용 하지 못하고 별도 보관 중이다.

한국의 전탑은 경북 안동에 많지만, 전탑과 유사한 벽돌형식 석탑은 경주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별로 구분되는 양상이 있다.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은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보물 제65호)과 경주 남산동 동삼층석탑(보물 제124호) 등과 함께 경주, 특히 남산 주변 산록에서 만들어진 장소적인 특징도 있어 한국석탑에서 또 다른 ‘전탑형 석탑’의 계보를 이룬다.

경주에 유사한 형태로 남아있는 서악동 삼층석탑과 남산동 동삼층석탑이 9세기께로 편년되는 것을 고려하면, 용장계 지곡 석탑의 건립 시기도 9세기께로 편년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옥개받침 단수가 서악동 석탑과 남산동 석탑보다 작고 수직 상승감이 큰 것으로 보아 이들 두 개 석탑보다는 늦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파손되었으나 상륜부가 남아있고, 원위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외관이 양호한 편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이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적극 협조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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