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세월호 등 어수선한 정국
좌절을 딛고 새로운 시대 열어갈
통합의 씨앗 심는 지도자 기대

▲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4월의 산하는 춘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맨 처음 꽃소식을 전한 통도사 영각 오른쪽 처마 아래의 자장매(慈藏梅)는 이미 얼굴을 살짝 내민지가 오래 되었고,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약탈되었다가 50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학성공원의 오색 동백은 환향의 기쁨으로 만개해 축제가 한창입니다. 무시로 만나는 무거천변의 샛노란 개나리는 언제나 봄의 최첨단 전령입니다. 남산 등산길에 갑자기 마주친 참꽃에 이어 작괘천을 따라 흐르는 벚꽃 구름은 폭풍같은 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대지를 적시는 봄비 따라 크고 작은 들풀과 들꽃들이 앞 다투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아낙들의 쑥 뜯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멀리 가지산의 등줄기는 녹색 풀물로 서서히 물들어 갑니다.

산하는 생명의 약동으로 가득한데 이 땅의 인간사는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성 경기 불황으로 자영업자들의 손이 오그라들고 아이들 입학, 취직, 결혼에 시달리는 개인사의 고충은 이미 만성이 되어 명함을 내밀 수도 없습니다. 한방에 수십만의 살상자를 낼 수 있는 핵미사일이 머리 위를 날아 다녀도 전쟁 나면 그 때 보자는 심정으로 속수무책입니다. 미군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드라는 무기를 설치한다고 평화스런 골프장을 파헤치고, 중국은 치사한 경제보복으로 팔목을 비틀어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입니다. 일본은 소녀상 문제로 주한대사를 멋대로 불러 간지 3개월이 지나서야 돌려보냈습니다.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백주 대낮 공항에서 형을 독살하는 사람이 우리의 동족입니다. 구한말의 상황과 흡사하다는 지적을 수없이 해도 지도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인간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는 헤겔의 장탄식이 들려옵니다.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적 통치와 허접한 비선들에 의한 국정농단을 자행한 박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과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 해도,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장면은 국민들에게 참담함을 안겨 주는 일입니다. 건국 후 우리 대통령들은 하야, 권총 피살, 본인 구속, 자살, 자식과 친형 구속 등의 사유로 임기를 마감했습니다. 이 땅의 대통령의 운명은 처참함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모두가 자기들이 저질러 놓은 일임에도 서로를 적폐세력이라며 참회를 모르는 정치인들이 한심합니다. 귀에 속들어오는 근본 대책도 없이 사탕발림으로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의 용기가 무식에서 나오는 건지 확신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300여명의 생명 그것도 꽃봉오리처럼 피어나는 학생들을 수장한 세월호가 3년 만에 떠올랐습니다. 이 땅 어른들의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고철덩어리가 되어 새싹같은 생명을 수장한 채 허망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처참한 상황을 모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뿐 진정 참회와 대책을 생각하는 지도자는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평화가 거대한 욕망의 인질로 잡혀 있어 환멸만이 가득한 이 땅에서 또 한해의 생명 활동을 재촉하는 4월은 아름다울수록 잔인하게 다가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멍청한 뿌리를 봄비로 뒤흔드니/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어주고/ 마른 덩이줄기로 가냘픈 생명을 이어주었으니” T.S 엘리어트의 ‘황무지’ 일부입니다.

시인은 지도자라 칭하는 자들의 욕망 앞에 20세기 인간 지성을 굴복시키고 900만의 살상자를 낸 1차세계대전의 참상 와중에 또 다른 욕망 덩어리인 새 생명을 재촉하는 4월을 잔인한 계절로 받아들입니다. 정신적으로 황폐한 도시에서 분명한 가치관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진 사람들에게 4월의 봄비가 새 생명을 싹 틔우는 것은 분명 잔인한 일입니다. 시인의 말대로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듯이 깊은 좌절은 희망을 필연적으로 잉태합니다. 잔인한 4월이 지나고 5월에는 이 땅에 평화와 통합의 씨앗을 심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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