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해설사의 비망록-울산여지승람](27)삼라만상의 깨달음, 범종

▲ 다른 나라의 종과는 달리 상륜부의 용뉴라는 고리부분에 탁한 소리를 빼내는 음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우리종의 특징으로 차별화를 갖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의 생명과 지옥의 중생 위해 친다고 해
한·중·일 종 가운데 가장 긴 여운·독보적인 울림
범종 ‘코리안 벨’이라는 고유학명도 가지고 있어

올해도 어김없이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밤을 가르는 울림, 종소리였다.

사람의 인식에는 역사적 선입견이 자리한다고 하는데 보신각종을 비롯한 울산대종의 범종소리가 한해의 시작과 함께하는 우리의 정서적 울림일 것이다.

그 여운을 되새기며 울산의 대표적 공원인 울산대공원 동문으로 들어가니 울산대종의 종각이 균형미 있게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주조된 울산대종은 울산을 상징하는 처용과 하대에는 반구대 암각화 문양을 새겨 넣었고 장중한 모습으로 울산의 소리를 담당하고 있다.

‘학교종이 땡땡땡’ 하고 치던 서양식 종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하는 종은 청동종(靑銅鐘)이며 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을 대체적으로 범종이라 한다.

범종(梵鐘)은 운판, 법고, 목어와 함께 사찰의 네 가지 중요한 사물(四物)중의 하나로서 삼라만상의 생명과 지옥의 중생을 위해 치는 것이라 한다. 사찰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범종이 불가의 바깥으로도 나와 성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고, 통행금지를 알리면서 제야의 종을 치는 우리 정서를 대표하는 소리가 된 것이다.

▲ 울산의 대표적 공원인 울산대공원 동문으로 들어가니 울산대종의 종각이 균형미 있게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주조된 울산대종은 울산을 상징하는 처용과 하대에는 반구대 암각화 문양을 새겨 넣었고 장중한 모습으로 울산의 소리를 담당하고 있다.

온갖 바람을 맞고 서있지만 그 바람을 통해 세상과 소리로 소통함이다.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 페르시아의 동은 거울을 만들기에 좋고 신라의 동은 종을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동종의 주재료인 구리에 주석, 아연 등을 혼합해 만든 것인데 우리나라에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까지의 동종은 10여개가 넘고 현대에도 종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종은 오대산 상원사 동종이며 성덕대왕신종보다 50년가량 앞서 만들어진 것이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대표적인 범종은 명물허전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다. 현재 경주박물관 종각에 걸려있는 신종은 관람객들이 진품이 맞는지 가장 많은 질문을 하는 유물이며 더불어 우리나라 고고학자, 문화재 관련자들 사이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품일 것 이라고도 한다. 신종은 이름이 세 개다.

신라 성덕왕의 원찰이었던 봉덕사란 절에 걸기위해 만들어져서 봉덕사의종, 정식명칭인 성덕대왕 신종,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에밀레종이다.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아들인 통일 신라 문화의 황금기를 이끈 35대 경덕왕 때 발원, 36대 혜공왕 때인 771년경 완성한 종이다. 성덕대왕 신종이 본명인 이유이며 원형 그 자체로 1300여 년의 세월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야기와 본연의 임무를 하고 있는 대표적 유물이다.

본명보다는 에밀레 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구리 12만근으로 제작된 신종은 20여년이 넘는 오랜 기간 종이 잘 만들어지지가 않아 아이를 넣었더니 종이 만들어져 아이가 뜨거운 쇳물에 들어가며 엄마를 찾는 소리, 혹은 원망하는 소리라 하는데서 유래가 되었다한다.

기술적인 이유는 동종은 구리와 주석 외 아연 등이 재료인데 이 재료는 단조(鍛造), 즉 두드려야 제대로 된 합금이 되지만 종은 주조 특성상 쇳물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굳혀야 함으로 사람뼈 속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인과 칼슘 등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는 유연한 합금비율이 된다 한다.

그리하여 아이를 넣었다는 설화가 전해졌지만 실지 우리나라의 유수의 대학에서 신종의 원료를 분석한 결과는 의외로 인이 검출되지 않았다 한다. 지금도 아이를 넣었는지에 대해선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실지 종이 사찰에서 쓰는 물건이라 살생을 금하고 있는 불가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그 가능성은 적지 않은가 하는 설이 많다.

되짚어보면 종을 만드는 과정이 어려웠다는 의미가 될 것이며 이는 연금술사의 기적, 금속합금의 총아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것과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실제로 에밀레란 별명은 주조 당시의 이야기가 아닌 일부 서양학자와 일제 시대 일본인 학자에서 나온 것 이란 설도 있다.

신종은 무엇보다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국보 중의 국보라 할 수 있다.

한때 다른 나라의 학자들 사이에 우리의 문화는 대부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평가절하 된 적도 있었다. 물론 그것을 모두 부인할 순 없으나 문화란 이동하는 것이고 발생지보다 전파지에서 더 화려하게 꽃핀 경우가 많다.

문화의 주도권을 잡는 이는 그 문화의 장점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고 성덕대왕신종도 그 중심에 있다.

일본의 모방송사에서 중국, 일본의 종과 우리나라 종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었다. 길고 짧은 두 개의 파장이 만나는 맥놀이로 표현되는 신종의 종소리는 깊은 울림과 긴 종소리의 여운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종이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울림을 선보였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판정이었다. 또한 우리의 종은 코리안 벨(korean bell)이라는 고유학명을 가지고 있다.
 

▲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다른 나라의 종과는 달리 상륜부의 용뉴(龍鈕)라는 고리부분에 탁한 소리를 빼내는 음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우리종의 특징으로 차별화를 갖기 때문이다. 신종은 정밀조사 결과 2003년 이후로 현재는 보존을 위해 직접 타종하지는 않는다. 녹음된 종소리를 20분 간격으로 들려주고 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느끼는 것은 마음이며 이는 우리의 정서적 코드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비록 지금은 직접 타종하지 않으나 그에게서 나오는 문화적 자부심과 기술력은 현재에 우리의 세계적인 한류산업과 기술력과도 무관하지 않은 역사적 흔적인 것이다

아침 33번, 저녁 28번 타종은 하늘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을 알려주며, 저 바다 속까지 산자와 죽은 자를 위한 깨달음과 구원의 소리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종의 종소리는 용의 읊조림 같아서 하늘 끝까지 오르고 땅 끝까지 스며들며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행복해 질 것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그 소리를 다운받아서 들어보자. 매일 매일이 불행 끝, 행복시작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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