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상선으로부터 최대 10척에 달하는 초대형유조선(VLCC)을 수주하게 됐다.

이를 두고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간접적으로 국민 혈세를 지원하고 의도적으로 ‘밀어주기’한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과 현대상선은 모두 산업은행의 자회사다.

대우조선은 현대상선과 지난 7일 서울 다동 대우조선 사옥에서 VLCC에 대한 건조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9일 밝혔다.

통상 선사는 발주 전 단계로 조선소와 투자의향서를 먼저 체결하며, 이후 큰 상황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최종 계약으로 이어진다.

이번 건조의향서에는 5척을 우선 발주하고, 최대 5척을 추가로 발주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 있다. 본계약은 7월 말까지 체결할 예정이다.

계약 금액은 아직 협의 중으로,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 기준 VLCC의 척당 시세는 현재 8천만 달러인데 그보다는 높은 가격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10척 모두 본계약으로 이어지면 전체 계약 규모는 9천억원대에 달한다.

대우조선은 정성립 사장은 “국내외 선주들은 대우조선의 기술력과 경쟁력에 여전히 높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며 “이런 선주들에게 좋은 품질의 선박을 제공하고 회사를 정상화해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박 발주는 정부가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성한 2조6천억원 규모의 ‘선박 신조 프로그램’을 활용한 첫 사례다.

현대상선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추가적인 중소형 컨테이너선 신조 발주도 검토하고 있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안정적 수익과 영업 경쟁력 강화의 기반이 되는 VLCC의 신조선가가 최저점인 올해가 발주 적기라고 판단했다”며 “선박 신조 프로그램을 통해 중장기 선대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계약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실상 경쟁 입찰의 의미가 없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을 살리려는 의지가 강해 현대상선을 통해 측면 지원에 나설 거란 게 이미 예견됐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국민 세금이 투입돼서 일단 살아난 회사인데 제대로 다시 자리 잡으려면 경쟁력 있는 발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경쟁입찰로 3사가 경쟁이 붙었는데 P플랜에 돌입할지도 모르는 대우조선이 수주를 따낸 데 대해 시장과 업계가 의아해한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경쟁입찰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결론이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대우조선 살리기를 위해 발주한다고 하는 게 맞았을 것”이라며 “평가 기준에 회사의 재무상태가 빠진 것은 특히 납득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대우조선 사채권자 채무조정을 앞둔 시점에 LOI 체결 사실을 알린 배경에도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선박 건조에 대한 본계약이 아닌 LOI 체결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은 공정한 심사를 거쳐 대우조선을 계약 상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VLCC 신조 발주를 위해 지난해 말 전사협의체를 구성하고 선박 신조에 대한 수요, 시장동향, 투자 타당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왔다”며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가 입찰제안서를 냈고 ▲ 프로젝트 이행 능력 ▲ 기술 역량 ▲ 가격 ▲ 운영비용 경쟁 요소 등 4가지 기준을 평가해 종합 점수가 높은 대우조선을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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