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암 등 중증질환 관련 신약
건강보험적용 등재기간 단축해
병원비폭탄·메디컬푸어 막아야

▲ 이호진 세민병원 부원장

2010년, 유방암 발병으로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던 유방암 환자 허모(63)씨는 암이 재발하면서 2015년 1월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해 9월까지 허셉틴, 도세탁셀, 퍼제타라는 세 가지 종류의 항암제를 섞어 총 11차례 주사했다. 그러나 항암제 부작용을 비롯해 기대한 만큼의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 캐싸일라라는 신약으로 바꾸어 25차례 더 항암치료를 진행했다. 이렇게 네 종류의 약으로 항암치료를 받았던 허모씨는 다행히 캐싸일라 덕분에 암이 많이 줄어들었고 현재는 회복 단계에 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그녀를 괴롭혔던 것은 각종 항암 부작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암 자체가 주는 극심한 통증이었지만 치료 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총 2억516만원에 달하는 엄청난 병원비였다. 이 중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는 2456만원으로, 건보 적용 진료비의 5%인 123만원은 허씨가 부담하고, 나머지 금액은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했다.

문제는 보험 적용이 안되는 두 개의 신약 값에 각종 비보험 검사비용을 더한 1억8183만원은 고스란히 허씨의 몫으로 남았다. 이 엄청난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허씨는 그 동안 모은 돈을 병원비에 모두 쏟아 부었고, 나중에는 집까지 팔아야만 했다.

이처럼 비보험 검사비용과 보험 적용이 안되는 신약 값을 감당하지 못해 카드빚을 내거나 나중에는 살던 집까지 내놓아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우리 사회는 ‘메디컬 푸어’라고 부른다.

이렇게 환자들을 메디컬 푸어로 전락시키는데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의료비 항목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두 배는 가볍게 뛰어넘는 상급병실료에 특진비, 게다가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검사의 상당부분은 비보험으로 값비싼 비용을 지불해야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국내 사망률 1위의 원인이 되는 암의 경우 신약을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임상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게는 월 몇천만원씩 내야 하는 신약 값을 지불하며 의료비로 인한 가계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들 중 국민의료비 중 가계지출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국가에 해당한다. 즉 생활비 중에서 병원비로 지출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병원비 지출 비중을 높이는 것이 비보험으로 인한 병원비 폭탄, 저소득층이나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외계층 등과 같이 실질적인 의료비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들을 선별해 지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의 미비, 신약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보건당국의 늑장 대응이다.

먼저 비보험으로 인한 병원비 폭탄이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메디컬 푸어로 전락해 제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함으로써 생명이 위협받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재난적 의료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부분이다.

특히 중증질환의 경우 빠른 속도로 신약이 개발되고 고가의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보험정책은 급속도로 등장하는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문제를 두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신약 보험 적용 허가가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내에 들어온 신약이 보험 적용 약제로 허가되기까지 평균 320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신약의 보험 등재 기간이 두 달 더 많은 셈이다.

메디컬 푸어를 줄이고, 재난적 의료비로부터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중증질환과 관련한 신약의 보험 등재 기간을 우선적으로 단축할 필요가 있으며, 각 급 병원과의 협의를 통해 임상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호진 세민병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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