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국애 울산과학고 교사

초임 때 발령받았던 학교가 사는 곳과 너무 멀어 이른 새벽부터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더구나 업무를 익히는 새내기 시절이라 퇴근 시간도 10시를 넘기기가 일쑤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퇴근 시간까지 늦다보니 늘 잠이 부족했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창문 사이로 스며오는 아침 햇살을 벗 삼아 짬짬이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자는 내 모습을 본 우리 반 남학생의 놀림으로 인해 그 생활도 청산해야 했다. 그러던 중 교과서에 실린 고정희의 ‘우리 동네 구자명 씨’는 잠이 부족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일곱 달 아기 엄마 구자명 씨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중략> 차장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 씨/ (하략)”

그때는 나도 ‘무섭게’ 버스에서 졸았다. 수면이 부족하다보니 업무가 가중되거나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 날이면 쉽게 화가 나고 짜증도 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집 가까운 학교로 옮겼다.

새학기가 되면 이런 ‘구자명 씨’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첫날 학생들은 해가 져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다. 심지어 3월부터 일부 학생들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 1학년을 맡은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을 달래고 상담하면서 그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가끔은 부족한 잠을 더 자고 싶어 학생은 학생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매년 3월 셋째 주 금요일은 ‘세계 수면의 날(World Sleep Day)’이다. 올해는 3월17일이었다. 세계에서 따로 날을 정할 정도로 잠은 우리 생활에서 아주 중요하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낮 동안에 겪은 경험과 학습들이 수면이라는 정리 과정을 거치면서 일부는 제거되고 혹은 새로운 정보들이 연결되거나 융합된다고 한다. 또한 적정 시간의 수면은 손상된 신체 및 정신 기능을 회복하여 일의 능률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적정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학습의 효율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과도하게 수면 시간을 줄이거나 지나치게 수면 시간이 긴 것은 신진대사를 떨어뜨려 급기야 삶의 무기력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난히 학교에서 잠을 많이 자는 학생들을 종종 상담하다보면 중학교 생활에 젖어 밤늦게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때는 이렇게 지내도 금방 몸이 회복되었지만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학습량이 증가하는 고등학교에서 회복하는 여유 시간이 적다보니 자도자도 잠이 온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지구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우리 학교 구자명 씨’들을 보면서 그들이 자신의 적정 수면 시간에 맞추어 새학기를 잘 보내기를 희망해본다.

김국애 울산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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