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16%만 인터넷뱅킹…스마트뱅킹, 고령층은 ‘그림의 떡’
지점 속속 폐쇄, 창구 거래에 수수료…노인들에 ‘금융 장벽’

▲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연합뉴스 자료사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데 은행 일 보기는 왜 갈수록 힘들어만 지는지…….”

인터넷뱅킹 비중이 높아지고 오프라인 은행 업무가 축소되면서 노인층이 금융거래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에 이어 오프라인 지점이 아예 없는 인터넷 전문은행까지 잇따라 출범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에 사는 심모(68·여) 씨는 요즘 은행에 한 번 가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최근 2∼3년 새 동네에 있던 은행 지점 3개가 한꺼번에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점이 없어져 거래은행을 바꾸면 새로 거래를 튼 곳도 얼마 못 가서 폐쇄되는 일을 두 번이나 겪고 나니 힘이 빠져버렸다.

은행권의 지점 통폐합 정책 때문이다.

심 씨는 “이제는 가장 가까운 은행도 1㎞ 정도는 걸어가야 한다”며 “무릎이 좋지 않아 많이 걷기가 힘들어 은행 일을 보려면 택시나 지하철을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일시 귀국한 최모(46·여·캐나다 거주) 씨는 병 시중을 드는 과정에서 난처한 일을 겪었다.

집안 돈 관리를 해 온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비는 물론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생활비를 은행에서 인출하지 못해 애를 태워야 했다.

어머니가 통장 거래만 해왔기 때문에 돈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은행에 사정을 호소해 봤지만 “예금 출금은 본인만 가능하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원 확인서 등 까다로운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쳐 간신히 병원비를 인출할 수 있었다.

금융기관이 예금주 의사와 상관없이 돈을 임의로 인출하는 일을 막기 위해 본인 방문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이다.

최 씨는 “어머니가 아버지랑 함께 인터넷뱅킹을 사용하셨다면 쉽게 예금 인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경영 효율을 위해 급속도로 번지는 금융기관 지점 폐쇄에 대해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불만과 반발이 만만치 않아 일부 제동이 걸리기도 한다.

지난 2월 충북의 한 신협은 경로당 두 곳 사이에 있는 지점을 없애려다 주민 반발로 폐점 계획을 취소했다.

지점 통폐합에 따른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현수막을 내걸고 여러 달 열심히 홍보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금융기관 지점 축소는 막을 수 없는 대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국 은행 영업점 수는 7천103곳으로 1년 전보다 175곳 줄었다. 관련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2002년 이래 최대 감소 폭이다.

현금인출기(CD기), 현금자동입출금기(ATM기) 등 자동화기기 수도 2천641개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인터넷뱅킹으로 쏠리는 소비자 금융거래 이용 행태를 반영한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중 전체 조회서비스에서 모바일을 포함한 인터넷뱅킹 비율은 80.6%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창구거래와 자동화기기 등을 통한 오프라인 거래는 15.5%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자 창구 거래에 수수료를 매기는 은행까지 등장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3월부터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 신규 고객에게 월 5천원의 계좌 유지 수수료 부과 제도를 도입했다. 전체 거래 잔액이 1천만원 미만이 부과 대상이다. 창구를 이용하지 않는 인터넷뱅킹 고객은 수수료가 면제된다.

KB국민은행도 거래 잔액이 일정 금액 이하인 고객이 창구에서 입출금 거래를 하면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역시 인터넷뱅킹 고객은 면제 대상이다.

사실상 창구 거래 주 고객인 고령층에 부과되는 ‘고령 수수료’인 셈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6년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인터넷뱅킹 이용자(최근 1년간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적 있는 사람) 비율은 세대별 편차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대가 79.8%, 30대 88.1%, 40대 73.5%인 반면, 50대는 42.5%, 60대 14.0%, 70세 이상은 4.3%였다.

인터넷뱅킹을 못 하는 고령층으로선 가뜩이나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어렵게 찾아간 창구에서 수수료까지 물린다니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은행들이 은퇴자 등을 대상으로 한 ‘실버 마케팅’을 통해 고령층 고객 잡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점을 고려하면 이중적 행태라는 시각도 있다.

일부 은행이 어르신 전용 점포나 전담 상담 창구를 운영하지만 고령층의 박탈감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현재 16개 시중은행이 전국 4천925개 지점에서 고령층 전용 상담 창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농협·대구·광주·전북·씨티은행은 전담 지점도 만들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금융사들이 고령층 전담 창구와 전화 상담 인력을 확대하도록 권장하고 나섰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스마트 뱅킹’ 시대에 점점 심화하는 금융의 노인 소외 현상을 점검하는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지금은 스마트뱅킹 시대인 동시에 백세시대에 들어섰다”며 “금융기관은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 전용 창구와 이동은행 활성화, 인터넷뱅킹 교육 등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