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화시킬 ‘작은 용기’
현명한 주권행사부터 시작해야

▲ 이성룡 울산시의회 부의장

누구나 세상을 바꾸길 원하지만/ 모두가 변화를 일으킬 순 없죠/ 오늘 내가 부딪힐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삶을 변화시키죠/ 이 노래가사의 제목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용기’이다.

부당한 상사의 요구 맞설 수 없는 힘에 눌렀을 때/ 내 꿈을 비웃는 부모님의 잣대에 걸려 허덕일 때…용기를 내야 할 때 침묵을 지키고 고개를 숙이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그나마 ‘작은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2011년 테이러 테이트 감독의 작품이다. ‘헬프’ 1960년대 유난히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 잭슨이라는 동네에서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소재로 잔잔한 감동을 준 영화로 기억한다.

인종차별, 우리에게는 낮선 문화에 100% 공감하기 힘들지만 대부분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그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려고 손을 내민 기자에게 용기를 낸 흑인 가정부 주인공,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이해했다.

그해 3월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1년 뒤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일본 총리관저 앞으로 몰려가 ‘원전 재가동 반대’를 외쳤다. 특정 정당이나 시민단체 소속이 아니라 순수하게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는 시민들이었다.

‘작은 용기, 세상을 바꾸다’의 저자 오구마 에이지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인문학자다. 그는 일본 원전 사태에 맞서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니 과감해져라”

그는 원전문제를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사회문제를 살폈다. 그가 말하는 ‘탈공업화’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이다. 여기서 그는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직접 행동과 참여를 강조한다. ‘데모를 해서 무엇이 바뀌는가’라는 질문에 “데모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대화를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라는 물음에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회, 대화가 가능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또 ‘참가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묻자 “참가할 수 있는 사회, 참가할 수 있는 자신이 탄생한다”고 답한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경구를 떠올리게 된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의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하는 말이 있다.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 과연 그럴까. 이 말을 의문문으로 되물어본다.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이 보다는 ‘나의 투표행위가 나를 바꿀 수 있다’고 말 하고 싶다.

사실 오구마 에이지 교수는 선거제도에 의한 사회변화에 비관적이었다. 투표를 통해 대표가 선출되는 과정에서 어차피 유력자나 대규모 조직을 등에 업은 후보가 승리하기 마련이다.

“시민은 투표일에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는 장자크 루소의 지적처럼 선거를 통해 사회를 바꾸기는 애당초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자발적인 변화, 개개인의 힘을 시너지화하는 연대는 다르다. 그 힘은 폭발력이 있다. 작은 용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작은 용기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적격자가 누군인지 옥석을 구분해서 잘 선택하는 일이 우리 모두의 몫과 책임으로 다가왔다. 부디, 동등하게 주어지는 주권을 포기하지 않고 현명하게 행사하시길 바란다.

이성룡 울산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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