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때 묻힌 손으로 서각 대한민국 장인에 오른 김재용씨

▲ 김재용 한국서각협회 울산지회장이 대한민국 장인 명판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있다. 장태준 인턴기자

현대車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다
은퇴후 고민중 2000년 서각 접해
첫 작품은 가훈 ‘무한불성’
인내 필요한 서각작업과 일맥
현재 손꼽히는 서각의 달인
서울 인사동서 개인전 열기도

형태도 없이 넓적한 나무가 조각칼과 끌을 손에 쥔 장인이 수만번 두드리고, 깎아내면 상상도 못한 작품으로 변신한다. 가정의 평안을 바라는 간단한 글부터 오래전 선조들의 한자시구, 불경(佛經) 해설이 담기기도 하고, 호랑이와 고래, 꽃 등이 새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글씨나 그림을 나무 등에 새기는 예술장르를 서각(書刻)이라 한다.

섬세함을 요하면서도 오랜 시간을 작업에 몰두해야 해 고도의 인내심까지 필요한 서각은 보통 손재주가 아니면 습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면에서 서각으로 대한민국 장인에 등재된 남경 김재용(57)씨는 조금 특별하다.

1986년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직 근로자로 공구를 손에 쥐고 십수년간 일해온 그는 지난 2000년 운명처럼 처음 서각을 접했다.

“남들보다 조금일찍 은퇴 후에 대해 고민했죠. 그때 저를 가르쳐주신 스승의 공방을 지나치며 서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 이거다. 하고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릴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는 그는 서각 입문 한달만에 첫 작품을 완성했다. ‘무한불성(無汗不成)’ 땀을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없다는 사자성어를 나무에 새긴 그는 가훈으로 집에 첫 작품을 걸었다.

“온전히 가족들만 보는 작품이라 의미가 남달라요. 특히 서각은 수천, 수만번의 두드림을 해야하는 정말 인내가 필요한 예술장르인데 ‘무한불성’이라는 말이 더욱 와닿죠.”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전통서각 작품의 대표로 꼽는다. 팔만대장경은 장장 16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재용씨가 말하는 서각의 매력은 나무 재질과 바닥작업 방법, 음·양각의 차이에 따라 작품이 크게 달라지는 것에 있다. 실제로 그의 공방에 걸린 작품들은 그가 두드린 횟수, 방법에 따라 비슷한 소재도 다르게 표현된다.

취미로 시작한 서각이지만 현재는 울산에서도 손꼽히는 서각의 달인이 된 김재용씨다. 제35회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등 전국 대회에서 그의 작품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울산서화예술진흥회가 주최한 제14회 울산전국서예문인화대전에서는 작품 ‘청화선생시구’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서각협회 울산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서관에 걸린 반구대암각화 작품과 박상진의사 생가에 걸린 현판 등은 그의 작품 중 백미이자 스스로도 아끼는 작품들이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예인(藝人)들이 모이는 서울 인사동에서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닌데 30주년 결혼기념일에 서울 인사동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개인전을 열게 됐습니다. 이래저래 의미있는 날이었죠.”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장인을 비롯해 공예명장 타이틀을 얻게 됐다.

베이비붐 세대로 30년이 넘는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은퇴 후에는 더욱 서각에 집중할 생각이다.

“요리를 배워 아내와 함께 공방이 딸린 작은 식당을 열고 싶은게 제 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각의 매력을 느끼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역할을 하고 싶어요.”

김준호기자 kjh1007@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