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도라'

“한국영화 속에서 대통령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가능하면 등장시키지 않고 싶다는 것이 창작인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대통령을 멋있게 그리면 비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리면 (관객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영화 ‘판도라’를 연출한 박정우 감독의 말이다.

한국영화에서 대통령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0년대 들어 강우석 감독이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를 내놓으면서 정치고발 영화의 스타트를 끊는다.

이 영화는 여권 대권 주자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를 추적한 작품으로, 당시 금기를 깬 영화로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서도 영화 속에 대통령의 모습을 담기는 쉽지 않았다.

실존 대통령을 다룬 작품들은 개봉 이전부터 많은 논란과 법적 송사에 휘말리곤 했다.

국민의 염원이 담긴 이상적 모습을 지닌 가상의 대통령을 그려 우회적으로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 '그때 그 사람들'

◇ 실존 대통령 다룬 영화

송강호가 주연한 ‘효자동 이발사’(2005·임찬상 감독)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대통령의 전속 이발사가 된 주인공(송강호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실화냐, 아니냐’라는 논쟁이 일었고, 일부 네티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6)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1979년 10.26 사건을 다룬 블랙 코미디영화다.

이 영화는 개봉 전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 법정 분쟁에 휘말렸다.

법원은 영화 속 다큐멘터리 세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는 내용의 조건부 상영 결정을 내렸고, 이를 계기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 '26년'

2012년에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26년’(조근현 감독)이 화제였다.

5·18 희생자의 유족들이 시민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는 이야기다.

2008년 처음 제작이 시도됐으나 소재의 민감함 때문에 4년간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시민을 상대로 모금하는 방식으로 제작비 일부를 마련해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개봉 이후에는 손익분기점을 훌쩍 뛰어넘는 296만 명을 동원했다.

▲ '변호인'

‘변호인’(2014·양우석 감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 등이 문제가 된 상황에서 사회적 정의와 이상을 추구하는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1137만 명을 불러모았다.

 

◇이상적인 지도자 그린 영화

국민의 염원을 반영해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그린 영화들도 속속 등장했다.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는 세 명의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퇴임을 앞두고 복권에 당첨된 대통령 김정호(이순재 분)와 외교적 수완이 뛰어난 데다 훈남인 대통령 차지욱(장동건 분), 최초의 여성 대통령 한경자(고두심 분)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첫사랑 앞에서 소심한 젊은이, 워킹맘 등 대통령의 정치인 면모보다는 인간적인 부분을 더 부각했다.

안성기·최지우가 주연한 로맨스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전만배 감독)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그해 12월 6일 개봉했다.

대통령(안성기 분)은 노숙자나 택시운전사로 변장해 민심을 살피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쳐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기 대통령으로 나온다.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그해 9월 선보인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이 꿈꾸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갖춘 하선(이병헌 분)의 이야기를 다뤄 흥행 열풍을 일으켰다.

최종 관객 수는 1230만 명에 달한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삽시간 퍼지면서 발생한 국가 위기를 다룬 재난영화 ‘감기’(2013·김성수 감독)도 이상적인 대통령상을 제시한다.

극 중 대통령(차인표 분)은 “정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는다”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
 

◇풍자 대상이 된 대통령

지난해 개봉한 ‘판도라’ 속 대통령은 풍자의 대상이다.

원전 폭발이 가져오는 재앙과 대혼란을 그린 이 작품에서 대통령은 실세 총리의 기세에 눌려 국가재난 생황에서 전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박정우 감독이 4년 전 쓴 시나리오였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시국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박 감독은 ‘시국과 너무 똑같다’는 평가를 의식해 예고편에 등장했던 몇몇 장면을 본편에서는 덜어내기도 했다.

극 중 대통령(김명민 분)이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입니까”라며 하소연하는 장면이나 실세 총리(이경영 분)가 장관들에게 “대통령은 판단능력을 상실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 등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외국 블록버스터에서는 대통령이 전투기를 모는 등 꽤 멋있는 인물로 많이 그려지지만, 최근 한국영화에서는 늘 내각에 휘말리고 충돌하는 대통령이 많았고, 이는 국민이 느끼는 실제 대통령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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