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화해, 한일화해 몸바쳤다”는 평가도…유럽 곳곳 탄생 100주년 음악회

▲ 작곡가 윤이상.

“삶과 작품 양면에서 아시아와 유럽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과 중국의 궁중음악을 서양 악기와 형식에 적용하면서 인도주의적 메시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뉴욕타임스는 18일 세계적 명성의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은 물론 스페인, 오스트리아,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대륙에서 열렸거나 열릴 예정인 기념 음악회들을 소개하면서 그의 생과 음악 세계를 이같이 평가했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에선 호소가와 도시오에서부터 진은숙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뿌리를 서양의 전위적 기법과 접목하는 작곡가들이 낯설지 않지만, 한국 작곡가 윤이상이 독일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관현악곡 ’예악‘으로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알렸을 때 동아시아 관악기인 생황(笙簧)의 음색을 관현악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신문은 그의 선구자적 역할을 강조했다.

신문은 윤이상이 독일에서 유학 중 박정희 정권 때인 1967년 한국에서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서독 정부의 항의와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과 같은 세계적 음악가들의 구명 운동 덕에 2년 만에 추방 형식으로 석방돼 독일로 돌아가 음악을 통한 남북화해와 통일 운동을 벌인 생애를 간략히 설명했다.

지난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중정이 사전 기획·조작한 것은 아니지만, 실정법 위반 정도가 약한 편이었는데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무력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간첩죄의 무리한 적용과 사건 외연 및 범죄 사실의 확대·과장”을 통해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포장한 것이라며 정부의 “포괄적인 사과”를 권고했다. 당시 최종심에서 간첩죄를 적용받은 피고인은 한 명도 없었다.

신문은 “남북한 모두 그를 자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생전 활동 무대를 제공했던 것은 북한이었다”며 평양에 윤이상음악당과 윤이상음악연구소를 세우고 윤이상 평화음악축전을 연 사실을 지적했다.

윤이상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윤이상음악제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북한에서의 활동 때문에 “지난날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는 것과 앞으로는 예술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혀 달라는 정부의 조건을 거부해 무산됐다.

오는 6월 오스트리아에서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 공연을 지휘하는 데이스 러셀 데이비스는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윤이상은 평생을 사람들을 화합하는 데 바쳤다”며 거기엔 남북화해 뿐 아니라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본에 대한 용서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음악은 이를 위한 그의 언어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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