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세기쯤이라는 한국고고학계 통설이 이 시대 유적과 유물에 대한 연대측정 결과 전국 각지에서 이보다 훨씬 빠른 기원전 15세기 무렵으로올가감에 따라 결국은 붕괴되게 됐다.  이에 따라 한국사는 그 시대의 역사를 전하는 문헌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상고사는물론이고 〈삼국사기〉로 시작하는 고대사 또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지금까지 한국고고학계는 중국 동북지방과 인접한 북한 지역은 몰라도 한반도 중남부 이남은 빨라야 BC 10세기 즈음에야 무늬없는 토기를 사용하는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보아 왔고 현행 국사 교과서에도 그렇게 돼 있다.  하지만 진주 남강댐 수몰지구와 북한에 인접한 강원도, 전남 등지에서 최근 확인되고 있는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에 대한 다양한 연대측정 결과는 이런 통설을 뛰어넘어 BC 15세기 안팎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청동기시대 대표적 무덤인 고인돌과 비파형동검을 비롯한 고도로발달한 청동기 자체도 BC 10세기 혹은 그 이전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1993년 단군릉 발굴 이전까지 북한 학계가 주장한 한반도 청동기시대 개막이 BC 20세기쯤이라는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한편 이에 대해 주체사상 운운하며 "무조건 연대를 끌어올렸다"고 배척해 온 남한학계가 완패했음을 의미한다.  최근 조사된 진주 남강 수몰지구는 여기서 확인된 각종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연대가 BC 10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BC 15세기 무렵으로 나오고 있다.  남강 수몰지구중 선문대 조사팀이 발굴한 옥방 유적의 경우 한 변 길이 15m 이상에달하는 초대형 집자리터에서 나온 목탄 2점에 대한 국립문화재연구소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각각 BC 1590~1310년과 BC 1620~BC 1400년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결과는 다른 남강 수몰지구에서도 비슷하게 나왔는데 건국대 박물관이 발굴한청동기시대 주거지 출토 목탄 2점 또한 BC 1420~BC 1100년, BC 1400~BC 1100년으로 나타났고 경남대 박물관 역시 서울대와 캐나다 토론토대에 시료측정을 의뢰한 결과 기원전 10세기를 뛰어넘은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지역의 경우 청동기시대가 남강 유역보다 더욱 올라가고 있다.  강릉 교동 주거지 1호의 경우 그 연대가 무려 BC 1878~1521년으로 나왔고 다른 두 곳의 주거지도 중심연대가 BC 15세기 무렵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청동 도끼가 출토된 속초 조양동 청동기시대 유적 또한 국립문화재연구소 연대측정 결과 BC 1206~BC 830으로 나왔으며 일본 나고야(名古屋)대가 연대측정을 실시한 강릉 방내리 유적 또한 빠르면 BC 14세기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조선대 박물관이 발굴한 전남 순천 죽내리 청동기시대 주거지도 외국 연구소에 탄소 연대측정을 의뢰한 결과 BC 15~16세기라는 결과가 나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런 연대측정치가 특정 연구소 한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내외 여러 기관에 의뢰해 얻은 결과라는 점이다. 이는 그만큼 이들 연대측정치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주고 있다.  집자리 유적과 더불어 고인돌 및 청동기 발생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대전 비래동 고인돌 유적과 청동 도끼가 나온 속초 조양동 유적은 그연대가 BC 9~10세기로 나왔다.  이는 이들 비파형동검이나 청동도끼가 청동기중에서도 대단히 주조 기술이 발달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지역에서 이들보다 앞선 조잡한 수준의 청동기는 이보다 빠른 시기에 등장했음이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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