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진 울산시민연대 시민참여팀장

송파 세 모녀는 어머니가 팔을 다쳐 다니던 식당을 그만두자 수입이 없었다. 그러나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소득으로 간주하고, 아픈 큰딸과 연봉 15만원의 만화가 지망생 작은딸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민건강보험료 4만8000원을 부과했다. 이를 ‘평가소득’이라고 한다. 평가소득이란 실제 소득이 있건 없건 성별과 연령에 따라 소득을 추정해서 매기고, 전세 보증금이 있거나 월세를 내고 있거나 재산과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어도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기소유 빌딩의 건물관리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등재해서 2만원대의 보험료를 납부했었다. 이처럼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부과체계 형평성에 대한 항의가 주를 이루는 민원이 매년 6000만건 이상 제기되고 있다. 독자 여러분도 근거를 알 수 없는 보험료 부과금액을 보고 혀를 찼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최근 정부와 국회가 보험료 개편안을 합의하고 내년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개편안에는 두 가지 핵심과제가 보이지 않는다.

첫째,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대책이 없다. 현재 공단에서 밝힌 체납가구는 150만 가구이다. 이 가운데 100만 가구는 보험료 5만원이 안되는 생계형 체납이다. 주소득자의 사망이나 실직, 파산, 질병 등으로 인해 장기체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험료가 체납되면 의료비 부담 때문에 병원에 가기 어렵고 몸이 아프면 소득활동을 할 수 없으니 생계가 곤란해진다.

우리나라 의료보장체계는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의료급여제도로 구성돼 있다. 건강보험은 사전에 보험료를 내고 사후에 의료서비스를 받는 ‘사회보험’이다. 전체인구의 97%가 가입하고 있다. 의료급여는 조세를 재원으로 빈곤계층에게 무료로 또는 소액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부조’이다. 일시적으로 소득활동이 어려울 경우 이를 융통성있게 연계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사회복지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정비할 때 늘 송파 세 모녀를 언급한다. 그러나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할 수 없고,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거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을 때 헌법에 명시된 생존권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의 건강보험과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가장 큰 차이는 ‘상병수당’의 유무다.

상병수당은 치료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의 일부를 현금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과 대만에도 상병수당이 있다. 막대한 의료비 부담으로 개인과 가족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사회안전망이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 두 가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제도가 사람을 외면하는 세상은 이제 걷어내야 할 때이다.

이승진 울산시민연대 시민참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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