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멸치

 

마른멸치 100g당 칼슘 최대 1905㎎ 함유
햇볕에 한번 더 말리면 비타민D 흡수 높여
풋고추와 함께 섭취하면 식이섬유도 보충

바닷바람을 머금은 햇살이 호드득 떨어지던 날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세 자매는 한달음에 선창가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도다리를 많이 잡으면 하늘거리는 노랑 원피스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터였다. 갈매기들은 작은 고기떼를 찾아 바다 위를 맴돌고 있었다. 마치 일렁이는 짙푸른 바다 속 어딘가에 있을 고기를 찾는 아버지처럼.

멀리서 아버지 배가 보였다. 옆에 오도카니 서 있던 엄마 얼굴에는 만선의 설렘이 선연했다. 아버지도 새벽 3시에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출항하면서 만선의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롯이 도다리에 희망을 품고 있었다.

생선이지만 생선이라 부르기에는 어쭙잖은 씨알 굵은 멸치가 갑판에 푸지게 널브러져 있었다. 불빛을 좋아하는 멸치 떼가 봄바람에 취해 길을 잃었던 것일까. 어둠 속에서 불 밝혔을 때가 아니라 대낮에 잡힌 거였다.

비록 햇볕에 그을려 구릿빛이었지만 장동건 만큼이나 잘생긴 아버지 얼굴에도, 성질이 급하고 까칠해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죽어버린 멸치에도, 은빛 비늘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실망한 나머지 외쳤다. “애걔, 멸치네.”

멸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멸치는 연중 잡히는 생선이지만 특히 3월부터 5월까지 가장 많이 잡히고 맛과 영양도 좋다. 작다고 무시하면 큰코 다치는 게 멸치다. 멸치는 칼슘이 100g당 생것 509㎎, 건조한 것은 1905㎎(큰 것)~902㎎(잔 것)이 들어 있다. 같은 무게의 우유(91㎎)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멸치는 칼슘 급원일 뿐만 아니라 고단백 식품이다. 특히 타우린이 풍부하다. 타우린은 피부, 관절 건강에 유익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압을 조절하는 아미노산이다. 멸치와 찰떡궁합인 것은 풋고추다. 함께 볶아 먹으면 멸치에 부족한 비타민 C와 식이섬유를 보충해 준다.

영양과잉 시대에 한국인이 부족하게 섭취하고 있는 영양소는 칼슘이다.

‘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여자(74.9%)와 남자(65.7%) 모두 1일 평균필요량 보다 적게 먹고 있었다. 이 결과는 1일 간의 섭취량 조사로 산출한 값이어서 개인의 일상적인 섭취 수준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점이 있지만, 매년 실시하고 있는 조사에서 칼슘 평균필요량 미만 섭취자 분율은 최근 몇 년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대개 칼슘이 부족하면 키가 자라지 않거나, 뼈와 치아가 튼튼하지 못하다고만 생각한다. 부쩍 아이가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칼슘 부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신경증으로 소화능력이 떨어지면서 모든 일에 짜증스럽게 반응하고, 집중력이 떨어져 학업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칼슘덩어리 멸치에도 조그만 약점은 있다. 우유에 비해 체내 흡수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유가 32%인 반면 멸치는 25% 정도다. 비타민 D는 칼슘의 흡수를 돕는다. 마른 멸치를 햇볕에 한번 더 말리면 멸치에 풍부한 비타민 D가 농축돼 흡수율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마른멸치를 빻아서 사용해도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

▲ 박미애 화봉고등학교 영양교사

기대가 무너진 우리는 멸치도 생선이냐며 타박을 하니, 아버지는 “멸치도 창자가 있다”고 하셨다. 엄마는 멸치로 코스요리를 해줬다. 먼저 전을 부치고 튀겨서 줬고, 느끼하다 생각이 들라치면 채소를 넣고 새콤달콤 초고추장에 무쳐줬다. 초고추장의 매운맛으로 입안이 얼얼할 성싶으면 연탄불에 구워서 뼛속까지 고소함을 느끼게 했고, 마지막으로 찌개를 끓여 진한 국물 맛에 밥 한 그릇을 해치우게 했다.

멸치는 모든 물고기와 사람에게 밥이 돼 준다. 그러나 작고 보잘 것 없어도 배알이 있으니 무시하지 말라 한다.

무수히 잡아먹혀도 강한 번식력으로 떼를 지어 다니며 당당하게 삶을 버텨낸다. 이렇듯, 쌓아 올리고 무너져 내리고 그래도 또 쌓아 올리는 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 배알 있는 멸치처럼.

박미애 화봉고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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