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현병은 위험성 예측 안돼 더 위험
내달말 시행 예정인 개정 정신보건법
비자의(非自意) 입원 필수조건화 해
병 자각못하는 환자를 사각지대 몰아
적절한 치료와 인권 보호할 수 있게
정신보건법의 재개정에 모두 나서야

올해도 흐드러진 벚꽃이 속절없이 떨어져 내려서 아쉬움을 달래던 지난 주, 울산에서는 끔찍한 비극이 보도되어 시민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하였다. 조현병을 앓던 40대 아들이 70대 노모를 흉기로 살해한 것이다. 조현병이 대체 어떤 질환이기에 이런 극단적인 행동이 가능한 것일까?

개별 사례는 정신감정을 해야 알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조현병에서 보이는 망상이나 환청 내용은 윤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상상을 초월하며, 때로는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그 중에서도 피해망상이 제일 흔하다. 망상은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유신시절에는 중앙정보부가 감시한다는 호소가 흔하더니, 20세기 말에는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늘었다. 최근에는 인터넷 댓글에서 자신을 모함하거나 휴대폰 정보를 훔쳐간다는 내용이 자주 보인다.

이러한 증상에 대한 대응도 환자마다 다르다. 위험을 피해서 커튼을 치고 집안에서만 지내기도 하고, 쌓였던 분노가 가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증상이 심해져서 현실 판단력과 충동조절능력이 저하되거나 환청의 명령에 사로잡히는 경우, 자해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이 경우 행동방식이 끔찍하고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워서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한다. 문제는 질환의 특성상 그 위험성을 전문가들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5월30일에 시행 예정인 개정 정신보건법은 이 위험성을 비자의(非自意) 입원의 필수 조건으로 삼음으로써 많은 환자들이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이리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법 개정과정에서 정신질환의 특성을 고려하지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0년대에 인권 보호를 위해서 위험성을 유일한 강제입원 기준으로 삼았지만, 이후 대부분의 주에서 중증 질환이나 치료 필요성 개념을 도입하여 보완하였고, 위험성 기준만을 고집하는 것은 높은 살인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보고되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병을 인식하지 못하여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내버려두는 것은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뒤늦게 깨달았는지 정부는 시행규칙에서 자해나 타해의 위험을 넓게 해석하겠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법령이 이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은 정부가 인권 보호의 원칙과 국내 정신의료의 현실을 고민하기보다는 여론의 들썩임에 따라 너무나도 가볍게 법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입원치료의 문턱을 높여왔다. 보호자의 사적 이익 추구를 막는다며 세계에 유례가 없는 보호자 2인 동의와 서류 구비를 조건으로 해왔고, 개정법에서는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 2인의 진단이 필요해졌다. 실제로 인권을 보호하기 보다는 단지 입원 절차만 까다롭고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법이 바뀌어온 것이다.

반대로 치료 받지 못한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건이 발생하면, 국민의 불안을 무마하느라 응급입원과 행정입원을 적극 요청하겠다는 등 급조된 대책을 내놓는다. 지난해 5월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청에서는 위험한 정신장애인을 선별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지만 부정확하고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보류하였다. 이렇게 정책이 양 극단을 오가는 가운데 많은 환자들이 정신병적 증상이 뚜렷하게 재발하여도 가족들이 치료를 시작할 방법을 찾지 못해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꼭 필요한 사람은 입원치료를 받도록 하면서도 불필요한 입원은 막을 방법은 없을까? 선진국은 사법적인 심의 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가 의학적으로 진단하면, 판사 또는 독립된 심의기구에 속한 법률가나 정신과 의사가 직접 환자를 조사하고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운용할 인력과 재원이 워낙 부족하여 대개 형식적인 서류심사에 그치고 있다. 제대로 된 심의기구가 작동한다면 굳이 입원 절차를 까다롭고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개정법에는 정부가 내세우는 인권보호가 허울뿐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엄격해진 기준에 따라서 비자의입원이 필요하다고 진단된 심각한 정신질환자를 의료기관도 아니고 의사도 상근하지 않는 정신요양시설에 수용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개정법은 비의료기관에 ‘증상의 정확한 진단을 위한 입소와 치료를 위한 입소’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2015년 현재 국내 정신요양시설에는 약 1만여명의 입소자 중에서 9천여명이 비자의로 수용되어 있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관행을 허용하고 지속하겠다고 하니 개정법이 주장하는 엄격한 인권 보호와 상반된다. 심한 정신질환자를 선별해서 비의료기관에 수용하는 일은 21세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모순된 개정법의 시행을 무리하게 확대하기 보다는, 정신질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도 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정신보건법의 재개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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