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언양읍성

▲ 영화루 성문의 출입구로 옹성이라 하고 왕래적 폐쇄구조로 되었다.

풍수적 읍성 입지 ‘막힌 수구’ 선호
장승·벅시 등 풍수비보 곳곳에
언양의 하구인 마산지역 일부 개발중
언양 일대에 큰 산불 등 피해있어
강 하구의 숲 소실이 원인일지도
하구의 조산·조산베기 흔적 복원해
수구막이 지킴이로 활용해야

울산 언양은 본래 신라의 거지화현(居知火縣)이었는데, 1895년(고종 32)동래부 소속의 언양군이 되었다가 다음 해에 경상남도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울산군에 병합되었다. 1962년 울산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울주군 언양면이 되고, 1991년 울산군에, 1995년 울산군과 울산시가 통합된 새로운 울산시에, 1997년 7월에는 울산광역시에 소속되었다. 언양의 지명유래는 이곳이 항상 양지바른 곳이라는 데서 나온 것이라 한다.

언양은 동남쪽으로 문수산(600.1m), 남쪽으로는 정족산(748m), 서쪽으로는 신불산(1159.3m), 서북쪽으로는 고헌산(1034.1m)에 둘러싸여 있다. 생기를 만들어주는 명당수 태화강이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곧게 흐른다. 주산은 화장산(271.8m)이다. 신라왕이 겨울에 중한 병에 걸렸는데 이 산에서 복숭화 꽃을 구해 먹은 뒤 병이 나았다는 도화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산이다. 산 정상부의 바위굴에 굴암사가 있고 그 자락에는 오영수 문학관과 언양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화장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언양읍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화장산 지맥이 이어지는 그 중심에 성벽으로 둘러진 빈 공간이 보이는데 그 곳이 바로 언양읍성이다.

▲ 성 둘레를 따라 넓은 물길을 만들어 보호와 안전을 보장 받는 해자의 흔적.

읍성은 행정구역 단위의 등급에 따라 크기에 차이가 있었는데,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성안에는 관아와 객사, 향교 같은 관공서를 두고 반드시 우물이나 연못 같은 시설을 마련하였다. 그 크기는 주민의 수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성들은 조선 말기까지 있었으나 1910년 일본의 읍성 철거령 때문에 대부분 철거되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읍성으로는 대표적인 것으로 정조 때 세운 수원읍성이 있으며, 그 밖에 비인읍성, 해미읍성, 남포읍성, 동래읍성, 보령읍성, 낙안읍성, 진도읍성, 경주읍성, 거제읍성, 홍주읍성, 언양읍성 등이 있다.

언양읍성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평지에 정사각형으로 쌓은 성이다. 성벽의 동서남북 4개면에 문과 그 위에 누각 등을 세우고, 성안에는 동헌과 객사가 있었고, 동서를 가로지르는 물길과 4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성 둘레에 물길을 만들어 성안을 보호하는 해자가 발견됐다는 뉴스 기사도 나왔다. 해자는 성안의 행정 보호와 안전을 보장 받으려는 풍수적 기술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는 남쪽의 문과 성벽의 일부가 복원되고 읍성부지 안에 언양초등학교와 수십 채 민가들이 있고 공터는 농사나 미나리꽝으로 경작이 되고 있다.

화장산을 주산으로, 언양읍성을 혈 중심 자리로 보는 시각에서 언양의 우측 백호산에 해당되는 산은 봉화산 지맥으로 읍성을 감싸는 지형으로 경부고속철 울산역사로 이어진다. 좌측 청룡산으로는 고운산과 연결된 반천일반산업단지를 거쳐 반송리 쪽으로 이어진다.

▲ 언양읍성 전경.

읍성의 성벽은 외부와 내부의 평지 공기 흐름을 차단시키는 기능이지만 사면으로 나 있는 출입문을 통하여 소통을 하게 된다. 외부의 나쁜 기운으로부터 성안의 기운이 보호받으려는 목적에 따라 읍성의 성문(城門) 대부분이 부가적 성벽인 옹성구조에 의해 돌아 왕래하게끔 설계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언양읍성 영화루에서도 볼 수 있다.

이상구의 학위논문 ‘조선 중기 읍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46년 당시에는 동부와 남부부락을 경계한 지점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목장승과 벅시라 하는 돌장승이 함께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에도 자리를 옮겨 그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언양 토박이 권영택 교수에 의하면 돌무덤으로 된 조산이 터미널 앞 사거리 근방에 있었고 조산베기 마을이 어음리에 있었다.

장승과 벅시는 언양의 기운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의 존재로 보이며, 안녕과 복락을 누리고자하는 주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조산은 돌무더기나 작은 동산으로 주민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게 된다. 베기는 진또베기 또는 솟대에서 보이듯이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지킴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 화장산에서 바라본 언양 전경.

‘풍수학을 이용한 조선시대 읍성 입지 지역에 대한 분석’이라는 이우동과 신진동의 논문에 의하면 읍성의 입지조건으로는 물길이 흘러나가는 수구의 넓이에서 높은 가중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이 나가는 쪽의 강폭이 넓으면 바람의 이동이 빈번하여 주변의 기압을 떨어뜨리게 되기에 막힌 수구를 선호하였다. 그렇기에 장승과 벅시, 조산과 조산베기는 언양의 안녕을 유지하려는 풍수비보의 노력이라 생각된다.

몇 년 전 언양의 하구 지역인 마산의 일부가 개발사업으로 소실되는 와중에 언양 일대에 큰 산불이 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현상은 언양의 강 하구의 숲이 없어진데 풍수적 원인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언양의 중심지역을 통과하는 경부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있었을 때 보다 ktx 등 고속철도가 통과하면서 언양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이는 고속철 다리가 풍수비보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풍수적 판단이다. 언양의 기운이 더 안정되려면 지난 날 있었던 언양 하구의 조산과 조산베기 흔적을 복원시켜 수구막이 지킴이로 활용해야 한다. 사통팔달의 땅 언양을 더 융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강상구 대왕풍수지리연구소장, 풍수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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