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내가 당신을 만진다면
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놀라지 않겠지

느리지만
한 번 움켜쥐면
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

▲ 엄계옥 시인

느림의 미학을 일깨운다. 소낙비처럼 급작스레 온 마음보다 드는 줄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멀스멀 스며든 情(정)이 더 무섭다.

화분의 흙과 뿌리의 관계처럼. 드는 줄 모르게 천천히 스며든 것은 단단한 응결이 된다. 달도 단 하루 만월을 위해서 한 달을 기다렸듯, 일 년을 기다려야 꽃 오듯, 모든 것은 천천히 느림으로 올 때 그 애틋이 도탑다.

사랑은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와야 상대도 놀라지 않는다. 더디게 다지며 온 만큼 단단하다. ‘한 번 움켜쥐면 죽어도 놓지 않는’ 단 하나의 뭉치가 된다. 그 과정에서 때론 이문세의 노랫말처럼 ‘사랑이란 게 때로는 지겨울 때’도 있지만 느리게 스민 시간이니 쉬이 갈라지지 않는다. 만남과 이별이 난무하는 시대에 천천히 음미해가며 읽을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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