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명 성안중학교 교사

학창 시절 선생님들께서 자주 하셨던 말들이 문득 생각날 때가 있는데,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선생님은 뒤에도 눈이 달렸다던가, 대학 가면 살도 빠지고 애인도 생길 것이다, 아니면 이번 시험은 쉽게 내서 교과서만 보면 다 풀 수 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별표 치며 열심히 외웠던 것들은 영 가물가물한데, 이상하게도 저런 말들은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에는 거의 잊혔나 했는데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 앞에서 그때의 선생님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그때 그 시절의 교실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선생님들은 “공부는 엉덩이 힘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학습에서 지구력과 집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벼락치기 같은 잔꾀를 부리지 말고, 우직하고 성실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기 위해 선생님들께서는 종종 ‘엉덩이 힘’을 강조하곤 하셨다. 하지만 시험 기간만 되면 이상하게 책상 청소가 하고 싶고, 책 한 페이지 보다가 지우개를 만지작대고, 노트 한 페이지 보다가 물 마시러 가는 그때 우리들에게 엉덩이 힘이란 참으로 알기 어려운, 미지의 능력이었다.

요즘 아이들의 시험 기간은 한 달쯤 된다. 시험 기간만 되면 학원에서 하루 종일 엉덩이 힘을 기른다. 학교 마치자마자 저녁도 거른 채 학원으로 달려가 10시, 때로는 11시까지 시간을 보낸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는 주말에는 더욱 바쁘다. 아침바람부터 학원으로 달려가 해가 지고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학원 선생님께서 만들어 준 퀴즈 문제지를 보물 같이 챙겨 풀고, 또 풀다가 하루가 저무는 것이다. 그야말로 엉덩이 공부로는 이들을 따를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엉덩이 힘’에는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다. 그저 학원이나 공부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데 온 힘을 다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배움은 꼭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 학원이든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면 그걸로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하루 종일 학원에 매여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더군다나 학원에서 내어 주는 숙제가 아니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과연 이런 공부들이 저 아이들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래서는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기는커녕 배움을 ‘버티기’쯤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중간고사 시험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시험에 대해 까맣게 잊을 것이다. 체육대회나 소풍 같은 떠들썩한 행사 몇 번 치르고 나면 또 다른 시험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 우리 아이들은 또 다시 학원에서 엉덩이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도 나의 지나친 바람이겠지만 부디 느리더라도 주체적으로 배워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소망해 본다.

이보명 성안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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