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생명의 단추 하나 붙어있는 응급실 복도  나른한 에테르 향들이 산나물소리에 놀라 술렁이고 있었다  나는 봄날 꽃가루 알르레기처럼 퍼지는 백열등 아래  응급실 침대에 누워 세상의 모든 질서를 삼켜 버린 죄,  그 찬란한 봄을 게워내고, 또 게워내고  내 몸 속의 물기란 물기 모두 빼앗겨버린 채  알 몸 백열등이 하얗게 눈 흘기며 내려다 보는 곳에서  가물가물 아지랑이 피어있는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봄 햇살이 하늘 거리는 산길을 따라  산초나무 어린 잎 가시 뒤에 숨어  겁에 질린 푸른 눈, 미처 보지 못했었다  발아래 엎드린 투구꽃 여린 새싹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나는 너의 손을 잡고 물기 오른 산길 벗어나고 싶었다.  잘못했노라고, 어린 너를 허락도 없이 꺽어버린 나  그 향긋한 유혹에 넘어가 지금 이렇게 무섭게  무저갱(無底坑)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세상의 시간  모든 아침은 죽음뿐이라고 네 보라 빛 사랑  그렇게 진하게 피를 토하고  피 서말은 쏟아야 살아난다는 네 사랑에  무릎 꿇은 죄, 사하여 달라고 내 몸 속 전해질에서 까지  꿈틀대는 너의 사랑에 무저항(無底抗)으로 굴복 당한 채  응급실 백열등이 부서져 내리며 울고있는 동안  그 찬란한 봄을 베고 나는 누워 있었다    *투구꽃 : 미나리아재비과 (초오(草烏)라고도 불림), 옛 병사들이 전투에서 머리를보호하기 위해 썼던 투구와 같은 모양으로 보라색 꽃이 여러 송이 함께 핀다. 신경통관절염의 한방재료로도 쓰이지만 잘못 먹으면 그 독성에 죽을 수도 있는 독초이기도 하다.    조덕자씨는 경남 하동 출생으로 1997년 문예지 "심상"에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현재 울산작가회의와 울산시인협회 회원이며 글수레, 울빛 동인 및 중구청명예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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