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출신 무슬림, 현충일에 자극적 한줄 …해임 요구 등 비난 거세

▲ 호주 공영 ABC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야스민 압델-마지드.

호주 공영방송사의 진행자가 호주 국경일을 맞아 자신의 SNS에 올린 짧은 글 하나가 큰 논란을 부르고 있다.

수단 출신 이슬람교도로 사회활동가로도 잘 알려진 야스민 압델-마지드(26)는 ‘앤잭 데이’(ANZAC Day)인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잊지 않기를(마누스, 나우루, 시리아, 팔레스타인…)’이라는 글을 올렸다.

언급된 마누스는 이웃 파푸아뉴기니의 섬이고, 나우루는 인근 나우루공화국을 일컫는다.

두 곳에는 수용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로 악명 높은 호주의 역외 난민수용시설이 있다.

앤잭 데이는 세계 제1차 대전 중인 1915년, 연합군으로 참전한 호주와 뉴질랜드군이 오스만튀르크(터키)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감행하다 호주군 8천명(뉴질랜드 포함 1만 1500명)이 숨진 것을 기리는, 호주의 ‘현충일’이다.

많은 호주인에게 뜻깊은 기념일인 점을 고려하면 야스민의 글은 호주 사회의 정서와 인식에 도발적으로 비쳤을 수 있다.

야스민이 지난 2월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슬람은 가장 페미니스트적인 종교”라고 말해 눈총을 받았던 만큼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했다.

보수 성향 인사들은 거센 비난과 함께 야스민이 호주 자연과 사람들을 소개하는 공영 ABC방송 프로그램 ‘오스트레일리안 와이드’의 진행자 자격이 없다며 방송사를 향해 해임을 요구했다.

유력 정치인이나 정부 관리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바너비 조이스 부총리 겸 농업장관은 26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진행자 발언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며 방송사 측에 단호한 조치를 요구했다.

토니 애벗 전 총리도 “ABC 방송은 호주와 호주의 가치를 지지해야 한다”며 현재 ABC 방송의 분위기가 이번 야스민의 언급을 초래한 셈이라고 비난했다.

일부는 줄리 비숍 외교장관을 향해 야스민이 맡은 호주-아랍관계위원회 이사 자격을 박탈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야스민을 비난하는 쪽과 지지하는 쪽이 갈려 있으며, 각각 해임하라거나 지지한다는 식으로 청원 운동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진행자인 야스민의 해임을 요구하는 청원에는 모두 4만 명이 서명했고, 반대로 야스민에 지지와 애정을 보내주자는 청원에는 800명이 동참했다.

야스민은 자신의 언급이 문제가 되자 곧 글을 삭제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방송사 측은 “야스민이 방송을 진행할 때만 방송사 규정을 지키게 돼 있으며, 방송 밖 활동과 관련해서는 방송사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히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주요 야당인 노동당의 빌 쇼튼 대표는 야스민의 언급이 “아주 신중하지 못했다”면서도 방송 진행자 자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년 전에도 공영방송 SBS의 체육기자 겸 프로그램 진행자가 앤잭 데이 100주년을 기리는 사람들을 향해 “글도 못 읽고, 대개 백인인 국수주의적 술주정뱅이와 도박꾼들”이라고 비난한 뒤 다음날 해고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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