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지구는 소리의 집이다. 그 소리를 감싸는 막이 고막이다. 텅 비어야 꽉 차는 것이니, 달팽이 관 안에 모여 든 그것들은 식구들이 일터로 떠난 때 제 기능을 다한다.
화단에서 파문도 없이 떨어지는 동백꽃, 시계침, 타자기 소리들이다. 소리는 고요의 다른 얼굴이다. 시끄러울 때보다 조용할 때 더 잘 온다. 창문 안을 기웃거리던 햇살이 방안으로 들어 백색의 제 몸을 삼각으로 오리기도 하고 동그라미로 오리기도 한다. 그 오려진 볕뉘에 누우면 온 몸을 감싸는 듯 한 깊은 따사로움. 그보다 더한 고요는 없다. 볕을 타고 흐르는 먼지의 행렬은 ‘조용히가 조용을 다’ 할 때까지 지속된다. 갑자기 집을 나설 땐 햇살과 조용을 내버려두는 게 아까워서 대문 안에 가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