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하는 ‘키다리 아저씨’ 정성교씨

▲ 고향인 울산 동구지역에서 ‘키다리 아저씨’, ‘기부천사’ 등으로 불리는 정성개발 정성교 대표. 장태준 인턴기자

고등학교때 아버지 사업 실패
장학회 지원으로 무사히 졸업
IMF로 어려운 시절 있었지만
사정 나아지면서 돕는일 앞장

1990년부터 이웃돕기 팔걷어
아너소사이어티 1억기부 동참
“기부와 나눔, 곳간 비우는 것”

요즘 말로 그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960~1970년도에 무려 화물차 3대를 몰면서 운수사업을 했다. 크게 부족함 없이 자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다. 그러나 그가 고등학생때 아버지 사업이 실패했고 집안은 크게 흔들렸다.

다니던 고등학교도 그만둬야 할 상황까지 처했지만 힘든 상황에서 받은 작은 도움은 삶의 방향을 크게 바꿔놨다. 한 장학회의 지원을 받아 다니던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그는 그때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나중에 자리 잡아서 성공하면, 꼭 남들을 돕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다짐을 잊지 않고 지난 1990년부터 고향인 동구를 비롯해 꾸준히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는 정성교(64) 정성개발 대표의 얘기다.

정 대표는 지난해 동구에서 3번째, 울산에서는 46번째로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이미 고향인 동구지역에서 그는 ‘키다리 아저씨’ ‘기부천사’ 등으로 유명하다. 매년 명절과 연말 때는 정기적으로 어려운 학생들과 복지사각지대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고 성금을 낸다.

그는 “도움을 받아본 사람이 도움을 줄 줄 안다.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는 않는다”고 운을 뗐다.

정 대표는 아버지의 실패, 그리고 빚을 내서 차린 사업장이 개업 1년만에 IMF를 맞으면서 인생에서 2번의 큰 좌절을 겪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어려움이 지금의 밑거름이 돼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었다.

힘들 때는 남들 돕는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정이 나아지고 나서는 다시 남들 돕는 일에 앞장섰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복지단체는 물론이고 고향인 동구에도 매년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모금회와는 지난해 향후 5년간 1억원이라는 고액을 기부하기로 약정도 했다.

그는 “이때까지 얼마나 기부를 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작은 도움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내가 받은 것처럼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며 “도움을 받았던 학생·사람들이 나중에 다시 나처럼 되면 그것이야말로 선순환의 원리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정 대표에게 ‘기부와 나눔’이란 ‘곳간을 비우는 것’이다.

그는 “돈이 많다고 과시하려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생색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많이 차 있으면 썩기 마련이다. 내가 돈을 벌지만 그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욕심을 부리면 또다시 좌절을 맛볼 게 뻔하다”면서 “채워놓을수록 손해다. 내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선에서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남들을 돕는 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홍기자 aqwe0812@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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