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 한국 비난하면서, 독재자 칭송하는 전략 황당해”

▲ 트럼프 말 한마디에 한반도 요동.

‘트럼프의 비즈니스 외교 전략’, ‘즉흥적 성격 + 국내 정치 곤경 돌파구’ 등 해석도

 

“북한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도록 놔둘 수는 없다.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워싱턴 이그재미너 인터뷰)

“김정은은 27살에 정권을 잡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그는 해냈다.” “지금은 북한과의 주요한 갈등을 종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로이터 인터뷰)

“그의 외삼촌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려고 했을 텐데 결국 정권을 잡았다. 꽤 영리한 친구다.” (CBS뉴스 인터뷰)

“김정은이 장거리 미사일을 가지면 우리(미국 본토)도 안전하지 않다. 그자(김정은)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폭스뉴스 인터뷰)

“상황이 적절하다면 김정은을 만날 것이다. 그를 만나게 된다면 영광이다.” (블룸버그뉴스 인터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나흘간 취임 100일을 맞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들이다.

어떤 때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나 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강도 높게 압박하다가, 또 김정은과 대화를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해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하다가 갑자기 ‘중국이 안 하면 우리가 할 것’이라며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대북 강경론을 한참 펼치던 지난달 28일 “좋게 보면 그만의 비외교적 방식으로 대화를 재개하려는 수순일 수 있다. 또 상대가 자신을 비이성적인 미치광이로 인식하게 해서 협상을 좋게 이끌려는 닉슨 전 대통령의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을 따르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NYT는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명은 북한의 도발을 외면해 오던 그가 상대방보다 더 터프하게 보이려는 과거의 습관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NYT는 “트럼프의 협상 전략은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다가 한순간에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며 최근 NAFTA 탈퇴에 대한 입장 변화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화학 무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시리아 공군기지를 폭격한 이후 아무런 후속 조치도 없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이 신문은 그러나 “NAFTA 문제와 김정은에 대한 신호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후자가 훨씬 위험하다”면서 김일성 이후 북한의 3대 정권이 행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천안함 폭침, 소니 픽처스 해킹, 최근 말레이시아에서의 김정남 사망 등을 예로 들며 북한 정권의 불가측성이 트럼프의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NYT는 “작은 행동과 상호 전쟁 위협이 자칫 오판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가 국제정치 무대나 미국 언론에서 ‘독재자’ 또는 ‘괴팍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국가원수들을 잇달아 칭찬하거나 만난 것과 김정은과의 대화는 ‘영광’이라고 말한 것이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 트럼프 초청에 튕기는 두테르테.

선거운동 기간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보였고, 지난달 초에는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고문 등 인권유린 비난을 받고 있는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을 초청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또 1일에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약과의 전쟁으로 비난을 받는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청했다.

WP는 “그가 독재자들을 칭찬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표출한 것은 역사가 깊다”며 “하지만 그의 어떤 독재자들에 대한 찬사보다 ‘영광일 것’, ‘똑똑한 친구’ 등의 표현을 사용한 김정은에 대한 찬사가 훨씬 수위가 높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엇갈린 메시지에 대해 주목해야 하지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동북아 센터의 신기욱 소장은 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정치권이 자신들의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트럼프의 발언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거나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트럼프의 혼란스런 메시지에 대해 “전략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직 트럼프 행정부에는 아태 담당 차관보도 없고 한국 대사도 없으며 무게 있게 한국 문제를 조언해 주는 사람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안보 사안을 비즈니스 모델로 다루고 있는 것”이라며 “그는 나름 성공한 사업가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고 그런 (극단적인 밀고 당기기) 방식이 옳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건강보험 문제와 이민정책 등 국내 문제가 꼬여 있고 국정운영 지지율도 매우 저조한 상황에서 나름 대외 문제로 돌파구를 찾으려다 보니 한반도 문제를 우선순위로 끌어 올렸을 수도 있다”면서 “곧 들어설 한국의 차기 정부가 차분하게 원칙을 가지고 대응해 나간다면,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호전시킬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 북미 정상회담.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지나치다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WP는 “미국의 6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민주국가인 한국을 꾸짖고 모욕하면서, 미국을 파괴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북한의 지도자를 찬양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게 되면 영광’이라는 말을 과연 쓸 필요가 있었느냐고 비판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인권운동가들에게서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퍼스트’의 롭 베르첸스키 부회장은 “독재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것은 그들의 극악무도한 행위를 승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대량 학살과 고문을 저지른 자들에게 ’영광‘을 부여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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