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과 화백의 전통 이어받아
대선 후보간 합의와 타협으로
소통하는 대한민국 만들어야

▲ 이근용 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대선 후보들 간의 방송토론이 연일 화제다.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밀도있게 선거운동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TV토론이라 매회의 토론 결과가 지지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토론 구성도 주최하는 방송사마다 과거와 다른 스탠딩방식이나 원탁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참신하고 생동감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과거 토론에서 질문자가 답변 시간을 주지 않고 질문만 하던 문제점도 이번에는 발언시간 총량제로 어느 정도 극복된 느낌이다. 사회자의 개입을 최소화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토론 내용면에서도 역대 대선때보다는 콘텐츠가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러 언성이 높아지는 때도 있지만 정해진 규칙과 매회 선정된 주제에 따라 토론이 이뤄지면서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는 느낌을 준다. 공방을 벌이던 후보들 사이에 가끔 동의한다든지 차이가 없다든지 하는 멘트가 나오는 것도 예전에는 잘 보지 못하던 장면이라 눈길을 끈다. 여기서 욕심을 더 낸다면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이성적으로 설득시키고, 정책입장이 다른 후보들 간에 합의에 이르는 장면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공약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약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공약의 한계나 문제점은 무엇인지, 공약이 이행됐을때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알고 싶어 한다. 좌파, 우파의 프레임이나 지역 연고 프레임이 적어도 이번 방송토론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토론의 방식이나 내용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모습은 설득을 통한 합의와 타협이다.

후보들은 토론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공약이 우월하고 상대의 공약이 문제가 많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온 힘을 쏟지만 유권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은 다른 데 있다. 마크 고울스톤은 도저히 설득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시도해봄 직한 팁을 제공한다. 그는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라는 책에서, 저항하던 사람이 남의 말을 듣게 되고 그 내용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보게 되는 단계에 진입하게 하려면 ‘3개의 뇌’ ‘편도체 납치’ ‘거울 신경세포’의 세 가지를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3개의 뇌’는 인간에게는 투쟁과 도피의 반응을 관장하는 파충류의 뇌(뱀의 뇌), 감정을 주관하는 포유류의 뇌(쥐의 뇌), 실용적이고 현명하고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는 영장류의 뇌(인간의 뇌)라는 3개의 뇌가 있는데, 설득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상대의 ‘파충류의 뇌’에서 ‘포유류의 뇌’ 다시 ‘영장류의 뇌’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뇌의 가장 안쪽에 있는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가 주도권을 잡고, 생각하는 영장류의 뇌는 힘을 잃는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파충류의 뇌’나 ‘포유류의 뇌’에 말을 걸면 안 되고 가장 바깥쪽에 있는 ‘영장류의 뇌’에 말을 걸어야 하는데, 파충류나 포유류의 뇌에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여기서부터 순차로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도체 납치’는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물리적인 위협이 감지되면 즉각 행동을 개시하는 편도체라는 뇌의 한 부위가 끓어 넘쳐서 감정과 사고를 관장하는 뇌의 전두엽이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두려움에 쌓이고 분노에 가득 찬 반항적인 사람들을 대할 때는 편도체가 갑작스럽게 가열되어 끓어 넘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울 신경세포’는 거울처럼 기능하는 신경세포로, 우리를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인도해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함께 느끼도록 해주기 때문에 공감능력의 바탕이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세상을 거울처럼 반영하면서 세상의 요구에 순응하고 세상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세상을 반영할 때마다 그 보상으로 누군가 역시 우리를 거울처럼 반영해주기를 갈망하게 된다. 이 갈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거울 신경세포 수용체 결핍’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라나 마음의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된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무관심과 적대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데 절망해서 상처입고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감정을 거울처럼 반영해서 이해하고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심각한 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비판을 접할 때마다 화쟁과 화백이라는 훌륭한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이니 언젠가는 훌륭하게 극복해 내리라고 내심 반박해왔다. 올해의 대선 과정에서 그 단초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근용 영산대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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