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기존 집 안 팔려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 못해
과잉공급→시세하락→거래위축→시장침체 ‘악순환’

#1. 청주에 사는 직장인 A(38)씨는 지난해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입주일을 생각하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소위 말하는 ‘빚을 내 장만한 집’이기 때문이다.

A씨는 지금 전세보증금 1억2천만원의 2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새로 분양받은 112㎡형(공급면적) 아파트의 분양가는 3억1천만원이다. 빠듯한 형편에 중도금 전부를 신용대출로 충당했다. 이미 안고 있는 전세 대출에 분양대금까지 맞추려면 2억원이 넘는 빚을 진 셈이다.

A씨는 “내 집 마련 꿈에 무리해서 아파트 분양을 받았는데 대출금을 언제나 다 갚을 수 있을지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상 관련 뉴스가 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차라리 분양권을 다시 팔까도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 직장인 B(43)씨는 3년 전 4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청주의 한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두 자녀가 커 가면서 지금의 20평대 아파트는 좁은 것 같아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지만 B씨는 아직도 이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고 이사하려고 하는데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집이 팔리지 않아 입주를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3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아파트를 사겠다고 구경 오는 사람조차 없자 B씨는 결국 새 아파트를 최근 전세 매물로 내놨다.

B씨는 “누가 보면 아파트를 두 채나 가졌다고 부러워할 수 있겠지만, 정작 살고 싶은 집으로는 이사도 못 가고 은행 대출금 이자 걱정에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불황 속에 청주 아파트 공급이 과잉 양상을 띠면서 미분양은 물론 미입주 아파트까지 늘어날 조짐을 보인다.

미분양은 건설사의 손해가 더 큰 반면 미입주는 집값 하락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도·매수자 모두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3일 청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한 아파트 단지는 3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입주율이 80%대에 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아파트 단지는 100% 분양이 완료됐는데, 입주민 20%가량이 아직 이사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는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기존의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입주하지 못하는 사례가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아파트 시세 하락에 따른 분양가 부담이 커져 입주보다는 매매 쪽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분양 이후 입주민이 들어오지 않는 ‘미입주 사태’가 나타난 데는 청주의 아파트 과잉공급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3월 말 현재 청주에 건설 중인 아파트는 25개 단지 2만847가구에 이른다.

이들 아파트의 입주 시기는 대부분 2018년에서 2019년 사이로, 특별한 인구 유입 요인 없는 상황에서 향후 2년간 2만 가구가 넘는 신규 아파트가 쏟아지는 셈이다.

아파트 과잉공급은 미분양 양산과 시세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청주지역 미분양 아파트는 1천633가구로 한 달 새 45%(510가구)가 늘었다.

전년 동기(713가구)와 비교하면 미분양 물량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 3.3㎡당 647만원이었던 청주지역 아파트 평균 시세는 올해 1분기 627만원으로 20만원이나 하락했다.

실거래가의 하락 폭은 이보다 더 클 것이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다.

시세보다 싸게 내놓아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평균 시세에 하락 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지난해보다 4천만원 이상 하락한 매물까지 등장했다.

아파트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장 분위기 속에서 실거래가 눈에 띄게 줄면서 도미노처럼 신규 아파트 입주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미입주의 경우 미분양보다 시세 하락을 더욱 부추겨 시장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기존 아파트를 처분할 때 거래가 어려워지면 가격을 낮춰 급매로 내놓는 물량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부동산 업계는 실제 최근 청주지역 아파트 매물 중 60∼70%가량을 급매물로 보고 있다.

실수요자들은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 기대 심리가 작용, 관망세가 두드러진다.

결국 급매물이 많이 나올수록 실거래가 위축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얘기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과잉공급에 따른 시세 하락과 기존 집을 처분하지 못한 입주자의 유동성 문제로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며 “자금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 실거주 중심의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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