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자질로 국운 좌우되기엔
현 국내외적 상황이 너무 급변세다
대선에 목매기보다 차분한 한표를

▲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전 언론인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이럴 일이 아니다. 민주시민이 국가대표지도자를 대충 뽑아서는 안되겠지만 죽기살기로 살기등등하게 선거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이 시대 우리나라 대통령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자리가 아니다.

첫째, 세계정세가 우리 대통령의 역량을 넘어선 상태이기 때문에 누가 되어도 국운이 걸려있는 천하대세를 크게 좌우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은 패권국가 미국과 새로운 패권의 지위를 넘보는 중국이 동북아를 무대로 힘겨루기를 하는 냉전이후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성되는 시기다. 세계질서가 잡혀있고 경제도 잘돌아가는 천하태평 시대에는 한국 대통령의 역량이 뛰어나면 국제사회에서 제법 말발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시진핑 같은 헤비급들이 정면으로 겨루는 살벌한 격투기의 시대에는 한국같은 낮은 체급 선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별 힘을 못쓴다.

요컨대, 지금같은 천하대란 시대에는 한국 대통령의 세계무대에서의 역량이 우리 기대만큼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느냐에 따라 나라의 앞날이 크게 좌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역사가 말해준다. 2차세계대전 때 독일과 소련(러시아)이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놓고 사생결단을 할 당시 중간에 끼여있는 폴란드, 체코, 그리스, 루마니아 같은 동구권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제아무리 뛰어나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들어가는 것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지금 동북아 정세도 한국 대통령의 역량을 넘어선 국면이다.

둘째, 지금은 정치권력이 해체되는 시대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국가 정치지도자의 영향력이 점점 쇠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를테면 트럼프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주나 마크 저크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줄리언 어산지 위키리크스 설립자 등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이 지도력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십의 다변화시대가 됐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정치분야의 인재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왔다. 예전에 비해 저수준인 정치꾼들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대통령후보가 뽑히다보니 후보의 수준도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한국 대통령은 다른 국력에 비해서 세계적으로도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우리 유권자들이 성공적인 대통령을 뽑기보다는 실패하는 대통령을 뽑아 왔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 불행하게 끝나버린 역사를 쌓아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살이를 하는 가운데 차기 대통령을 뽑고 있는 현 상황이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대통령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고르는 경험 수준 안목이 민주주의 선거를 오래 해본 나라들에 비해서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넷째, 독재를 방지한답시고 세계적으로도 짧은 5년 단임 대통령을 뽑다보니 인구 5000만 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5년마다 걸출한 대통령이 나올 수가 없다. 한국과 국력과 인구가 비교가 안되는 미국도 이변이 없는 한 8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중국은 10년, 내각제를 하는 영국·독일도 총리가 길게는 10년이상 재임하기도 한다. 세계평균에도 못미치는 5년짜리 대통령을 거듭 뽑다보니 지도자 인재가 바닥이 나버린 상태이다.

다섯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감옥에 갔고, 우리는 대통령 없이 나라를 운영해왔지만 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고 미국과 중국이 으르렁 거려도 한국은 대행체제로 잘 돌아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것만큼 대통령의 존재가 그렇게 중요한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에 너무 목을 맬 일이 아니다. 민주사회 생활일상의 하나로 차분하게 투표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안되어도 절망할 일이 아니다.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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