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경주 양동마을

▲ 성주산 봉우리에서 바라본 양동마을의 모습이다. 안강평야 넘어 비학산이 보인다.

살포 ‘勹’ 내부에 획 두개 품은 형태
울타리 안에 주거공간 있으면 평안
여강 이씨 종가건물 무첨당·향단과
명문대 졸업생 배출한 봉점댁이 해당
영호출산형 지형의 정기 받아
조선의 문신 우재·회재선생 태어나
평지에 터 잡은 이씨 자손 더 많아

한국의 전통 가족주거문화는 대가족제도에서 1960년대 이후 산업사회를 거쳐 도시화 되면서 빠르게 핵가족 제도로 변천되어 왔다. 현재는 더 분화되어 일인가족 세대수가 증가하는 추세로 조사되고 있다. 농경사회 당시는 대부분이 성씨가 같은 종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씨족 공동체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특히 사대부 전통마을은 산과 계곡을 따라 펼쳐진 경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저택들, 양반 계층을 대표하는 많은 자료들을 보유하고 유교사상 및 생활관습들이 보존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로 평가받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풍수지리적 명당이론으로 보는 전통마을과 자연부락의 입지는 대부분 평지에 인접한 배산임수형이거나 산지의 장풍형 구조로 되어 있고, 집들은 대부분이 냉한 바람과 침수의 조건으로부터 피해를 줄이는 안전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주어진 공간에 있어 터 기운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기준으로는 주변의 지세와 산세, 물길의 방향, 도로, 토질 등을 관찰하여 판단한다. 여기서 지세와 산세는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물길과 도로는 굴곡을 이루어 아름다우며 토질은 흩어짐이 없이 밝고 단단할 때 생기(生氣)가 유지된다고 보아 명당기운의 유무를 판단한다.

▲ 무첨당은 제사를 지내는 제청(祭廳)의 기능이 강했으나 남성들의 독서와 휴식, 손님접대를 위한 큰 사랑채로 쓰였다.

말물(勿)자를 닮은 지형으로 소개되는 안강의 양동(良洞) 마을은 600여년 된 전통마을로 50여 채의 기와집과 100여 채의 초가가 잘 보존 관리 되고 있어 2010년에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 등록된 마을이다. 기개 높은 정기를 간직한 비학산(761.5m)을 할아버지 산으로 하여, 주산 설창산(163m)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5개의 지맥이 각기 길이와 굵기가 다르게 남동향을 향하며, 그 품속에 사람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안산은 좌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문필산으로 성인(聖人)을 뜻하는 성주봉(100m)으로 지척에 있어 조선의 문신 우재 손중돈(1463~1529)과 회재 이언적(1491~1553)을 배출하는데 있어 풍수적 요인이 되었다는 풍수설이 있다. 마을 중앙을 흐르는 소류 명당수는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구곡수(九曲水)를 이루고 있으며, 비학산과 설창산 사이로 넓은 안강평야가 있고 설창산 기슭으로 기계천이 감싸 흐른다. 그리고 객수(客水) 역할을 하는 형산강(63.3km)은 창대(昌大)한 기운이 되어 마을 터에 직간접적으로 기운 안정에 영향을 주며 울산 두서면에서 발원하여 경주를 거쳐 포항으로 흐른다.

마을의 유래를 살펴보면 첫째는 월성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 선생이 청송 안덕에서 560여 년 전에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양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면서 벼슬길에 오른다. 둘째는 여강이씨 찬성공 이번(1463~1500)과 손소의 딸이 혼인을 하면서 처가인 양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두 분 사이에 큰 아들로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을 낳았다. 결국 손소의 외손자인 회재 이언적으로부터 이곳 양동마을에는 손씨와 이씨가 서로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돼 있다.

▲ 강상구 대왕풍수지리연구소장·풍수공학박사

산, 물, 방위와 인간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풍수지리에는 형국론이 있다. 형국론은 관찰 대상으로 하는 전체적 지형이 만물 중 하나를 닮음에서 시작된다. 예로는 봉황새가 알을 부화하는 봉황포란형, 꽃이 피는 모습의 모란반개형,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 등 많다. 말물(勿)은 살포(勹)를 몸으로 그 내부에 삐침 획 두 개를 품고 있다. 주변 산줄기의 연결이 勹자 형이고 그 울타리 안에 주거공간이 있으면 평안하게 될 것이다. 양동마을이 그렇다. 이 마을에는 풍수지리에서 논하는 명당 터로 회자되는 월성손씨 종가건물 서백당과 관가정이 있고, 여강 이씨의 종가건물인 무첨당과 향단이 있다. 그리고 경산서당과 근래 부자(父子) 간에 서울대 하버드대 예일대 졸업생을 배출한 양동리 봉점댁 초가가 있다.

서백당과 관가정은 勹의 등위에 있고 그 품안으로 무첨당 향단 경산서당 양동리 봉점댁이 있다. 이는 여강 이씨 가문이 보다 안정된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이고 있다. 형국론적 차원에서의 말물(勿)자를 뼈대로 보고 살을 부치면 머리 다리 배로 구분되는 네발이 달린 동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이때 무첨당 터는 현무봉이 임산모의 배같이 둥글고 크다. 이는 많은 후손 개체 수 출산을 의미하기에 양동마을의 풍수적 형국은 신령스러운 호랑이가 새로운 개체를 생산하고 있는 영호출산형(靈虎出産形)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듯하게도 서백당에는 식와(息窩)라는 태실이 있다. 이 태실은 출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실인데, 여기서 보면 정면 좌측으로 아름다운 성주봉이 눈앞에 보인다. 이 터의 정기를 받아 우재선생과 회재선생이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땅과 터를 판단하는데 있어 주변의 지형지세 조건도 중요하지만 현재 건축된 집 자리의 땅 기울기도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낸다. 무첨당 경산서당 봉점댁은 평지기운에 해당되고 서백당 관가정 향단은 경사지에 해당된다. 박채양과 최주대가 밝힌 ‘SPSS로 분석한 입수이상 묘의 절자 비율변화’와 ‘비탈에 쓰여 진 묘와 후손번성에 대한 SPSS 통계분석’의 논문에 의하면 평지와 경사지에서의 후손번성 개체 수는 평지일 경우에 더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결과적으로 암반의 평지 면에 터를 잡은 무첨당의 영향인지 양동마을에는 여강 이씨의 개체수가 손씨에 비해 더 많다.

이 마을에서 만들어지는 전통한과 쌀엿 조청 약과 청주 유과 양동장은 맛이 좋아 전국으로 공급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다루는 명당기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사람의 심성이 근본적으로 복을 많이 지을 때, 그 결과로 나타나는 영향은 더 좋아지게 되는 것이 자연적인 순리이다. 앞으로도 주변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명당기운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유네스코 문화재 양동민속마을의 명성이 세계로 알려져 부흥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마을 출신 손씨와 이씨의 양대 문벌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출현하여 인류사회를 위해 크게 공헌하는 일 들이 많기를 기대해 본다.

강상구 대왕풍수지리연구소장·풍수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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