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찬 울산스마트동물병원장

동물을 적정하게 보호하고 관리,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해 복지를 증진하므로써 국민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보호법이 1991년에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동물의 학대행위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처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토록 돼 있다. 그러나 심심찮게 자행되는 동물학대행위를 보면 법 규정만으로는 안되고, 결국 반려동물의 복지에 대한 국민 의식수준이 높아져야 할 것 같다.

동물복지차원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는 농장동물의 사육현장이다. 생산된 먹거리로서의 축산물에만 관심을 가지지 그 축산물이 어떻게 생산되고, 길러지는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또 생산성을 이유로 아직까지 동물복지라는 개념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A4 용지 한장만한 공간에서 먹고 알을 놓는 과정만 되풀이하다 생을 마감하는 산란계, 몸도 누이지 못하는 밀집된 공간에서 배설물에 뒤범벅이 된 채 길러지는 돼지, 발목까지 빠지는 질척거리는 분뇨더미 위에서 먹고 자며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들과 육우들이 우리의 먹거리로 길러지고 있다.

1964년 공개된 Ruth Harrison의 <동물기계(Animal Machine)>라는 저서를 통해 동물, 특히 농장동물도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안과 두려움, 좌절과 기쁨 등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농장동물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영국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에서 동물의 5대 자유를 규정하게 되는데, △배고픔과 갈증, 불량한 영양상태, △불안과 스트레스 △정상적인 습성과 행동 △통증, 상해, 질병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또 국제수역사무국에서는 건강하고 편안하며, 영양상태가 양호하고, 안전하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통증이나 두려움, 고통과 같은 불쾌한 상태를 겪지 않는 상태를 좋은 동물복지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동물보호법에서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데 있어 윤리적 책임을 지고 동물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하며 환경을 동물의 행동에 맞추어 스트레스를 줄이고 축산의 생산성을 높여 안전하고 우수한 축산물을 생산하도록 하는 등 생산과정에서의 동물의 복지를 규정하고 있다.

지난 겨울 우리나라에서 조류독감이 창궐, 발생지역에서 살 처분된 닭과 오리가 3000만마리 이상 된다고 한다. 고병원성 조류독감의 치사율이 거의 100%로, 발생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한 거리 내에 있는 가금류를 예방적 차원에서 살 처분해 매몰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류독감은 가금류만 걸리는 것이 아니고 기러기나 청둥오리 같은 야생조류도 걸리는데 이들에게서도 치사율이 높다면 호수나 강에서 많은 사체를 볼 수 있을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결국 면역력의 차이다. 사람도 건강하면 독감을 며칠 앓고 말지만 허약한 사람은 사망하기도 하는 것처럼 조류독감도 면역력의 차이가 치사율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결국 조류독감이 가금류에 치명적인 이유는 면역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면역력이 부족한 것은 면역력이 길러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사육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한 먹거리로서 농장동물이 길러지기 위해서는 사육단계에서 동물복지의 개념이 정립되어야 한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 길러지는 축산물은 결코 건강한 먹거리일 수는 없다.

허찬 울산스마트동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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