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학 (사)한배달 회장·전 강원대 교수
지난 4월1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때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는 수천 년 세월과 많은 전쟁이 얽혀 있고,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란 말을 들었다”고 밝힌 데 대해 국민들은 중국 또는 시진핑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다양한 항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더 책임이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참으로 너그럽다. 우리 교과서에 시진핑이 한 말의 내용이 들어있는데도 우리 정부에는 별로 항의하지 않은 것이다. 솔직히 시진핑이 ‘나는 당신들 교과서 보고 한 소리요’하고 말하면서 그 내용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머쓱해질 것이다.

현 국정교과서인 초등 사회 5-1로부터 검정교과서인 중학 역사와 고교 한국사까지 ‘고조선의 마지막 왕을 준왕이라고 하고 위만이 그를 폐하고 고조선의 왕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준왕은 중국기록에 기자의 40여세 후손이라고 했으니 둘 다 중국 사람이다. 그리고 중국 한나라가 위만조선(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점령하고 그 자리에 설치했다는 낙랑 등 소위 한사군을 평양 부근으로 가져다 놨다. 거기가 고조선의 중심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왕조는 사대사상에 휩싸여 명나라의 속국(有明朝鮮)임을 자청했으니, 고대와 근세의 두 조선은 시진핑의 말대로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우리 역사교과서에 적혀 있는 셈이다. 이런 내용을 안다면 무슨 염치로 시진핑에게 항의할 수 있을 것인가?

울산사람에게는 더 기찰 일이 있다.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울산사람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는 의미를 담은 ‘고조선의 세력범위’ 지도가 실려 있는 것이다. 울산만 뺀 게 아니고 임진강 이남을 모두 고조선의 세력범위에서 제외했으니 현재 남한 사람들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단군왕검이 건국했다는 고조선 역사를 교과서에 포함해 가르친다. 그런데도 그런 교과서를 만들거나 심의하여 합격시킨 정부에는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가야를 빼고 ‘삼국시대’ ‘삼국통일’, 발해를 빼고 ‘후삼국시대’ ‘후삼국통일’이라고 하며, 고조선으로부터 고구려, 발해에 이르는 3300여년 간 우리 민족으로 함께 살아온 발해의 후손들인 거란과 여진을 갑자기 이민족이라고 기술한다. 당나라와는 ‘전쟁’을 하고 원나라에 대해서는 ‘항쟁’을 했다면서 일본으로부터 독립 또는 광복하려는 민족투쟁을 3·1운동, 독립운동, 의병운동, 즉 ‘운동’이라고 한다. 민족 간의 투쟁이 아닌 일본 내부의 사회 소란 정도로 보는 일본인 시각이다. 우리 시각은 아니다.

또,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하면서도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15~20세기라고 하여 고조선의 건국인 서기전 2333년보다 늦은 것으로 모순되게 기술하고 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항의를 하자 교육부 쪽에서는 얼버무릴 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검정교과서 집필진에 질문을 했더니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는 있다’고 답했다. 이것이 정부와 선생님들이 할 말인가.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필자가 ‘서기전’이라고 고쳐서 말했지만 사실은 ‘기원전’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호에 관한 법률’이 서기를 공용연호로 사용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국조의 건국을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표현하는 기독교 예속 국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 교과서를 감독하는 교육부, 집필하는 교수나 선생님들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들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쌓인 과제가 많아 역사는 뒷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나라의 혼’이므로 ‘역사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설 수 없다’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 정부에서 미래의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면 가장 먼저 우리 역사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국정이나 검정이냐 하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박정학 (사)한배달 회장·전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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