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문화예술계 현실 반영
새정부 실효성있는 정책 수립
생계위해 예술 접는일 없애야

▲ 김대종 울산중구문화의전당 관장

90년도 중반 즈음 수 년 동안 연극판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단순한 호기심에 서울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들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틈틈이 알아 보았더니 배우 90% 이상이 평균 연봉 300만원에서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었다. 월 평균 25만원이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요즘은 그보다는 좀 더 오르긴 했겠지만 물가 상승률을 따지면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애마부인’이라는 영화를 대부분 알 것이다. 영화를 직접 보지 못했을지언정 제목은 들어 봤을 것이다. 이 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한 연극배우가 있었다. 필자도 잘 아는 여자 배우였다.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그녀가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한 것은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그녀로서는 영화사가 제시한 적잖은 개런티를 쉽게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라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녀도 이 영화의 출연을 놓고 근 한 달 넘게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그 후 소식이 끊기긴 하였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는 배우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천재 바이올린 주자 신상철 선생은 한 때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이자 훌륭한 바이올린 선생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이 분 제자였고 전 KBS교향악단 악장이었던 김의명, 김복수 모두 이 분 밑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분이 갑자기 서울시립교향악단을 그만 두고 한 방송사의 경음악단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어보니 고전음악을 해서는 도저히 입에 풀칠하기 힘들어서 그나마 벌이가 나은 방송사 쪽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시립교향악단 급여보다 밤무대 출연도 하고 가수 녹음도 할 수 있는 방송국 경음악단 수입이 더 좋았다. 많은 사람이 그의 재능을 아까와 하며 말려도 보았지만 그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선생은 2011년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몇 푼의 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옷을 벗어야 했던 연극인, 생계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던 천재 음악가, 그리고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외롭게 골방에서 죽어간 배우…. 과연 우리는 그들이 선택한 것을 옳고 그르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느 것이 답인지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고 동지라는 것이다. 삶을 풍요롭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가치를 직접적으로 전달 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 예술가에 대한 대우가 그리 좋지 못하다. 음악은 그나마 낫다. 개인 교습도 있고 음악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있다. 연극은 앞서 말했듯이 일년에 몇 백만원의 수입이 전부인 배우들이 태반이다. 연극 한편 출연에 1000만원 이상의 출연료를 받는 배우는 상위 1%에 불과하다. 무용은 더 열악하다. 단지 그 끼를 어쩌지 못해 예술을 전공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현실에 부딪치면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의 예술인은 당장 호구대책이 필요해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평생 배운 것이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것이니 거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정부에서 새로운 문화정책을 내세운다고 한다. 부디 지금의 이 열악한 문화예술계의 현실을 보완, 몇 푼의 돈 때문에 옷을 벗어야 하고, 전공을 포기해야 하고, 외롭게 골방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예술인이 없길 바란다.

김대종 울산중구문화의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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