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빙하기가 시작된 지 백년이 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빙벽, 핸드폰으로도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연애도 머리로 하는 얼음인간들은 옆방에서 시체 썩는 냄새조차 맡을 줄 모른다. 외마디 신음소리조차 들을 줄 모른다.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벌레인간들은 돈 위에다 집을 짓고 돈 이파리를 뜯어먹고 산다. 흙보다 땅을 더 좋아하는 신인류, 한 자리에서 같은 언어로 말하는데 서로 다른 방언으로 들린다. 알아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소화도 흡수도 안 되는 비닐 같은 말, 그들의 말은 귀로 들어왔다가 곧바로 항문으로 빠져나가버린다.

아직도 돈보다 땅을, 땅보다 흙을 더 사랑하는 인간들이 있다.
로시난테를 타고 빙벽을 향해 돌진해보는 자들이 있다.
빙벽에다 말 폭탄을 던져보는 레지탕스들이 있다.
말이 곧 장미가 되고 돌고래가 되던 때를 꿈꾸는 족속들이 있다.

▲ 엄계옥 시인

해설도 카프카적으로 해야 겠다.
인간은 로봇 출산 후 로봇이 되어갔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단계에 올라 감정을 말살하고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말을 하며 인정부터 배척했다. 빙하기의 도래였다. 신빙하기에 인간으로 남은 분류들이 있다. 시인들이다, 땅보다 흙을 사랑하고 장미 돌고래와도 소통할 수 있는 족속들 이들조차 서로 다른 말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소화도 흡수도 한 되는 비닐 같은 말 때문에 로봇이 된 인류와의 소통을 위해 말에 해설을 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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