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티칸 미술관(Musei Vaticani)

▲ 바티칸시국의 또다른 핵심공간 ‘성 베드로 대성당’. 교황의 미사가 직접 열리는 이 곳에서 ‘피에타’와 같은 신앙과 예술의 결정체를 또다시 볼 수 있다.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시국에 위치…24개 공간으로 구성
인류사 아우르는 예술품부터 희귀 문서까지 소장품 방대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거장 작품들도 한곳에
年 입장객 600만명 제한, 환기·냉방시스템으로 작품 보호
120여 년에 걸쳐 지어진 성 베드로 성당도 함께 둘러봐야

이탈리아 로마 시내 서쪽, 바티칸시국은 서울 여의도에 못미치는 작은 면적 안에 약 950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대부분이 성직자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 가톨릭 성당의 총본산으로서 전 지구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티칸 미술관(혹은 박물관)은 작은 나라 바티칸시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교황청과 가깝지만 단순히 교회 유물만 전시하지 않는다. 예술품과 고문서, 희귀 자료와 벽화 등 세계 인류 문명을 한 곳에 전시하고 있어 몇날 며칠을 출퇴근하듯 드나들어도 소장품의 맥락을 제대로 꿰차기 힘들다. 미술관 안에는 주제를 달리하는 크고 작은 공간이 24개나 들어 있다. 하나의 공간을 개별적으로 따로 떼어내도 여타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뒤쳐지지 않으니 그럴만도 하다.

▲ 황금빛 천장이 아름다운 지도의 방. 120m 길이의 아름다운 복도를 걸을 수 있다. 벽면에는 옛 로마황제 시대의 지도가 걸려 있다.

본격 관람길은 보통 회화관에서 시작된다. 11~17세기의 회화 작품들이 미로처럼 얽힌 열여섯 개의 방 속에 모여있다. 예술작품의 경지를 넘어 이미 인류의 유산이 된 작품들이다. 서양 회화의 아버지 조토부터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카라조바에 이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다.

그 중 교황의 총애를 받았던 라파엘로는 4개의 방 벽화를 새로 그린 뒤 죽었는데, 지금은 ‘라파엘로의 방’이라는 독립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특유의 고전적인 품격과 부드럽고 감미로운 색감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곳이다.

벽화와 천장화로는 미술관 내 시스티나 성당도 빼놓을 수 없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천장화)와 ‘최후의 심판’(벽화)을 동시에 볼 수 있어 미술관 관람의 정점을 찍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세계 각 지에서 모여 든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영화나 책에 자주 소개돼 이미 익숙한 작품이지만 일단 그 곳에 발을 딛는 순간 상상 이상의 규모와 세월을 비켜 간 선명함 때문에 말없이 천장만 바라보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는 석회와 모래의 배합, 반죽의 점도까지 조절하며 물에 개어 그려야 한다. 까다로운 과정과 고난도의 기법으로도 손꼽힌다.

미술관은 관람객이 배출하는 땀과 이산화탄소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3년 전 연간 입장객을 600만명으로 제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에어필터 등 환기시스템은 물론 발열량을 절반으로 줄인 조명등도 달았다.

온도로부터도 민감한 지, 반팔 소매를 입었을 경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실내온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명작에 대한 사람들의 열의 또한 그 못지 않아 콩나물 시루처럼 꼿꼿하게 선 채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며 사방의 그림을 살펴보기에 바쁘다.

이처럼 성스러운 곳에서 추기경들은 교황 서거 혹은 사임 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비공개 선거회의)를 진행한다.
 

▲ 미술관 주 출입구의 실내공간은 나선형 계단의 색다른 공간으로 디자인 돼 있다. 1932년 주세페 모모가 설계했다.

소장품의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바티칸 미술관의 기원은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0년 간의 아비뇽 유수(1309~1377·황제권이 강화돼 교황이 로마를 벗어나 프랑스 아비뇽에 머무른 시기)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 온 교황들은 실추된 교황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지금의 성 베드로 성당과 궁전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506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포도밭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래된 조각상이 발견됐다.

‘라오콘 군상’이다. 라오콘은 트로이 멸망과 관련한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인데, 조각상은 화가 난 신들로부터 벌을 받아 두 아들과 함께 뱀에 물린 뒤 고통 속에 죽어가는 라오콘의 모습을 묘사했다.

당시 교황이던 율리오 2세가 그 소식을 듣고 미켈란젤로를 보내 조각상을 사들인 뒤 자신이 살고있던 바티칸 벨베데레궁 정원에 들여놓고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바티칸 미술관은 1506년 당시의 벨베데레궁 개방 행사를 미술관의 첫 출발로 삼는다. 희귀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을 전시한 뒤 일반에 공개했다는 점이 현대의 미술관 개념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10여년 전인 2006년에는 500주년 축하행사를 갖기도 했다. 미술관 개관에 단초가 된 ‘라오콘 군상’은 지금도 벨베데레 정원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벨베데레 정원 옆에는 피냐의 정원이 붙어있다. 원래는 한 공간이었으나 정원을 가로질러 바티칸 도서관이 세워지면서 둘로 나뉘었다. 피냐(Pigna·솔방울)라는 이름은 4m 가량의 거대 솔방울 분수 조각상 때문에 붙여졌다. 이 곳의 또다른 명물은 청동으로 된 지구본 모양의 조각품이다.

▲ 크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거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시스티나 성당)를 보러 가는 도중, 원형의 방 한가운데 네로 황제의 욕조가 놓여 있다.

1960년 로마올림픽을 기념해 이탈리아 조각계의 살아있는 전설, 아르날도 포모도로가 만들었다. 오염되고 멸망하는 지구를 형상화 한 것으로 작품명은 ‘구(球) 안의 구’ ‘지구 안의 지구’ 등으로 해석된다. 수천년 전 유물과 현대조각예술이 공존하는 것이다.

미술관 관람이 끝난 뒤에는 바티칸시국의 또다른 핵심공간, 성 베드로 대성당을 둘러볼 차례다. 애초의 성당은 서기 90년 베드로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바티칸 언덕에 세워진 것이고, 이후 326년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틴티누스 황제가 지금의 이름으로 성당을 지었다.

▲ 미술관 건물로 둘러싸인 피냐의 안뜰에 청동으로 만든 ‘구(球) 속의 구’가 놓여있다.

16세기 이후에는 로마를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만든 교황 율리오 2세의 주도로 기존건물을 완전히 허문 뒤 새로운 성전을 세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후 120여 년 간 르네상스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주임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며 지금의 건축물을 구축했다.

▲ 홍영진 기자 문화부장

성당 안에는 스물 네살 청년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걸작 ‘피에타’도 볼 수 있다. 우리 말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다.

세상의 모든 성당은 ‘땅에 맞닿아 있는 하늘’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우리의 미래가 될 천상 성전의 모습을 바티칸에 견주기도 한다. 천재화가의 위대한 생애와 기적같은 감동 앞에서 전율을 느낄 수도 있다. 찬란한 신앙과 예술의 결정체가 수천년 간 누적된 곳.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 이유다.

홍영진 기자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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