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현재의 시련에 적극적으로 대처
후손에게 풍성한 유산 물려줘야

▲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얼마 전 앙코르 와트에 다녀왔다. 알다시피 이 일대 유적을 건설한 왕조는 크메르 왕조로 9C부터 15C까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많은 유적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것이 12C 초에 건립된 앙코르 와트이다. 이 사원은 캄보디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사원의 정면에서 보이는 탑들의 모습은 캄보디아의 상징으로 이 나라 국기에 표현돼 있다. 중세의 크메르 왕조가 멸망한 후 앙코르 일대는 정글에 파묻히다시피된 채로 몇 세기를 지났으며, 본격적으로 외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 이후부터였다. 프랑스의 자연과학자인 앙리 무오가 1860~1861년 사이에 이 지역을 조사하고 자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가 사망한 후 1864년 그의 기록들이 책으로 출간되었고, 그 후 많은 고고학자 등이 이 왕조의 문화를 연구하게 돼 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세계인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져서 글로벌 여행 사이트인 ‘트립 어드바이저’에 따르면 ‘세계 가고싶은 여행지 10곳’ 중 2위(2015년 기준)에 뽑히기도 했다.

이 세계적인 문화 유적을 둘러보면서 당시의 기술로 건축한 사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규모와 섬세함 등에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생각의 한 구석에는 뭔가 자꾸 자리잡는 게 있었다. 먼저 그렇게 거대한 왕조도 멸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상세한 기록이 없어서 왕조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는 없으나 건축물과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 등에 의하면 상당한 규모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왕조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왕조도 역사 속에 묻혀버렸는 바 과연 현대 국가는 어떨 것인가?

약육강식의 전쟁으로 멸망하는 국가가 많던 그 때와는 다르긴 하겠지만 지금도 너무 안이한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유럽 문화의 발상지이며 고대 최고의 문화를 자랑했던 그리스는 2010년 국가부도상태에 들어가 EU와 IMF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는 신세로 추락했다. 국가 뿐만 아니라 도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디트로이트시는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의 주력공장이 입지해 있던 지역으로서 20세기 중반 인구가 165만명이나 거주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절반 이하(2011년 기준 71만4000명)로 감소할 만큼 도시가 쇠퇴한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는 한 때 경남 제1의 도시였던 마산시는 창원시에 통합되었고, 거제시도 최근 조선업의 불황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 번 째는 왕조는 멸망했어도 그들의 유산은 살아남아 후손들에게 든든한 먹거리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캄보디아는 국민 총생산액이 159억달러(2011년 기준, 1인당 1039달러)로서 그 중 비중이 제일 높은 산업이 서비스업으로 43.2%를 차지한다. 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해 연간 250만명(2010년 기준)이 이 나라를 찾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앙코르 와트를 비롯한 조상들이 남긴 유적 때문이다. 멸망하지 않고 더욱 강성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못했더라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김으로써 자손들에게 견고한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해 수출액 세계 8위를 달성하는 등 산업화 이후 아주 짧은 기간에 외국에서 놀랄만한 속도로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을 이뤘으나 경제적으로는 아직 3만달러(1인당 소득)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으며, 세계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한 우리 울산도 최근 조선업 불황 등 대내외적인 악조건으로 어려움에 직면, 산업구조의 전환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고 도전에 안이하게 대처할 때 문명은 쇠퇴한다”고 한 토인비의 말이 있듯이 우리가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또 지금의 시련을 역사의 도전으로 받아들여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후손에게 풍성한 유산을 물려줘야 할 것이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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