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온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대통령선거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 후유증은 남아
막연한 불안이나 섣부른 기대는 접고
이제는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와야할 때

대선후보들은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들
소시민들이 그대로 본받기는 어려워
선거구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우리에게 던진 희망메시지로 이해하길

대통령 탄핵 사태로 갑자기 치르게 된 대선 경쟁도 막을 내렸다. 두 달 동안 검증되지 않은 주장과 비난을 쏟아내던 선거유세는 혼전을 거듭하다가 투표일을 앞두고 심한 황사로 대미를 장식했다. 국민들은 안내방송에 따라서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창문을 꼭 닫고 있는데, 후보자들은 종일 전국을 누비며 목이 터져라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물론 혼신의 힘을 다해서 국가를 위해 일하겠다는 후보들이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라고 해서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리라.

대선 후보에게 권력을 쥐어주기 전에 치러지는 유세 과정은 일종의 신고식이 되었다. 후보는 자신을 한껏 낮추고, 국민을 떠받들며, 국가에 헌신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지 않을 겸허한 사람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반면에 점점 치열해지는 TV 토론회에서는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대 후보의 약점을 아프게 들추고, 자신에 대한 칼날은 비껴가는 모습이 마치 고대 로마 검투사들의 싸움 같다. 후보들은 국민을 향해서는 매번 존경하고 감사하다며 미소를 보여주지만, 후보들 간의 토론에서는 작은 틈도 놓치지 않고 냉혹하게 공격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평소 치매 증상으로 내원하면서 뉴스에 관심 없던 할머니도 후보자 토론만큼은 열심히 보신다고 한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어떤 분은 안보가 걱정된다며 불안해하고, 다른 분은 정의로운 나라를 이미 다 이룬 것처럼 마음이 들뜬다고 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유세 과정에서 후보들이 국민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부풀게 하였던 후유증은 아직 남아 있다.

선거 기간 중 후보들의 언행은 표를 얻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인데도 국민들은 그런 사정을 쉽게 잊어버린다. 후보들이 TV에 나와 간절한 표정과 확신에 찬 말투로 신념을 밝히면 시청자들은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면서 이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언행도 본받기 쉬운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들이 선택한 목표와 역할은 일반인의 평범한 삶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해왔고, 산전수전 끝에 각 당의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리더들이다. 겉으로 잘 웃고 친근한 모습과 달리 욕심이 많고 권력의지가 매우 강하다. 비난과 지적을 받아도 웬만해서는 주눅 들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능력에 대한 확신이 강하므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감행한다.

이러한 특성은 어려운 시기에 국가를 이끌 지도자로서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선량하고 양보 잘하는 사람을 이웃으로 두고 싶어 하지만 유약해 보이는 사람을 국가 지도자로 뽑기는 꺼려한다. 우리나라가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도자의 결단과 확고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자기 확신과 주장이 강한 후보가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유권자들은 리더의 확신에 찬 모습에서 위안을 찾는다.

정치인들도 유권자의 바람대로 강인하고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쉽고 단순한 방안을 주장하고 스스로도 확신하려 애를 쓴다. 이 대략적인 계획은 선거 구호로 활용되었을 뿐 아직 자세히 검토된 적도 없지만, 일단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선거 공약이라는 추진 명분을 얻게 된다. 이제는 선거의 여세를 몰아서 공약했던 정책을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권력자는 일부러라도 반대자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자기 신념을 점검하고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도록 부단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대선 후보들이 한 바탕 무대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공허하다. 후보들이 확신에 차서 우리의 삶을 끌어올릴 방법들을 들려줄 때에는 그럴 듯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지금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면 왜 진작 못했을까?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정치인들의 업무 특성상 확신에 찬 태도로 희망을 일깨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자. 물론 너무 심하게 말을 바꾸거나 거짓된 기대를 일깨우는 것은 반칙이다.

대선 후보들의 구호를 순진하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그들의 언행을 따라 하는 것은 일반인의 행복에 마이너스가 된다. 긍정의 힘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기대는 더 큰 실망으로 귀결된다. 아직 잘 모르는데 확신하는 척하는 것도 해롭다. 국민들의 섣부른 기대와 확신은 새 정부에 쓸데없는 부담을 주어 잘못된 판단으로 이끈다.

선거 기간의 분위기로 보면 대선 결과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확 달라질 것만 같지만 대한민국의 저력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 이제는 불안도 흥분도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정부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꼼꼼하게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는 구호보다 디테일에서 온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