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공장부지서 보관하다...대왕암공원 입구로 이전키로

동구청, 이달말께 본격 이전

▲ 고(故) 김영주 한국프랜지 명예회장 사저 내에 위치한 가로 2.9m, 높이 2.8m 크기의 쌍바위가 동구 대왕암공원으로 옮겨진다.
조선시대 후기 관료의 한시가 새겨져 있는 울산 동구지역 ‘낙화암 쌍바위’가 대왕암공원으로 옮겨진다. 오랜 기간 사유지에 보관됐던 중요한 지역문화유산이 40여년만에 시민들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동구청은 고(故) 김영주 한국프랜지 명예회장 사저에 있는 낙화암 쌍바위 일부와 현대중공업 내 위치한 암각석 등을 이르면 이달말 대왕암공원 입구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낙화암은 흔히 절개가 있는 여인들이 충절을 지키려 하거나 불의에 맞서 강물 속으로 투신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동구에도 이같이 기녀의 슬픈 전설을 담은 낙화암이 존재했다.

“울산 부사가 어린 기생들을 데리고 와 풍류를 즐기다 취흥이 돋은 기녀 하나가 실족해 수중고혼(水中孤魂·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외로운 넋)이 됐고, 기녀의 붉은 치마와 비단 저고리가 파도에 실려 다니다 큰 바위섬에 걸려 그곳을 홍상도(紅裳島·붉은 치마가 떠내려온 섬)라 하고 소매가 실려 나온 곳이 녹수금의(錄袖錦衣·푸른 저고리가 내밀린 백사장)가 됐다”는 지명유래가 전해지는 곳이 바로 낙화암 쌍바위다.

1829년에 남목 감목관(조선시대 지방 목장에 관한 일을 하던 종6품 관직)으로 부임한 원유영(元有永)은 전설 속 기녀의 슬픈 사연을 듣고 명시 8수를 읊어 낙화암 바위에 새겼다고 전해진다. 이 기록은 영남읍지(1871)속의 울산목장지, 1917년 간행된 울산안내 등에 언급돼 있다.

낙화암은 지난 1970년대 초까지만해도 동구지역 주민들에게는 쉼터의 역할을, 가끔은 주민들의 놀이터 역할을 하기도 했고 지역 초·중등 학생들에게 봄·가을 소풍 명소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일대가 공장부지에 편입됐고 해안과 숲, 마을과 자연 속에 담겨진 풍경들은 헐어지거나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낙화암도 파괴됐으나 일부는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특히 고(故) 김영주 명예회장이 바위에 새겨진 한시들을 보고 4수의 한시가 새겨진 쌍바위는 사저 내에, 나머지 4수의 한시가 새겨진 암각석은 시문이 훼손되지 않도록 현대중공업 내에 옮겨서 보존·보관했다.

장세동 동구문화원 지역연구소장은 “낙화암 쌍바위는 문화재로 지정되고도 남을만한 지역사적 기록과 풍채 등 굉장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문화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동구청은 사업비 3000만원으로 이송업체의 장비 접근문제, 이전방안 등을 해결하고 이달 말께 본격 이전할 계획이다. 낙화암을 대왕암공원으로 이전한후 바위에 새겨진 한시의 번역, 유래 등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동구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관광자료와 학습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편 동구청은 이전장소 선정을 위해 지난 2~3월 동구문화원과 동 자생단체 등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문화원 이사 21명 만장일치, 주민 1073명 중 835명(82%)이 대왕암공원을 선호했다.

정세홍기자 aqwe0812@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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