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석남사

 

신라 헌덕왕때 도의국사가 창건
3대 비구니 수련 도량으로 유명
나무들은 연둣빛 옷으로 갈아입고
청신한 바람·옥빛 물 흐르는 소리에
마음까지 청정해지는 계절
정갈하게 가꿔진 고찰에서
영혼 맑히는 시간 가져

부처님오신날이 지난 어느날 저녁에 석남사를 찾았다.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때 우리나라 남종선의 시조인 도의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져오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청도 운문사, 공주 동학사와 함께 3대 비구니 수련 도량이기도 하다.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인 가지산(1240m)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옥류골에 위치한 이 절은 자연경관이 빼어나 삼사십년 전만 해도 울산 최고의 관광지였다. 먹고 살기가 힘든 시절에는 당일관광조차도 큰 힘을 내야 할 수 있었고, 관광지 또한 흔치 않았던 그 때 인기가 대단했던 석남사는 관광자원이 크게 늘어난 오늘날에도 피서지나 단풍놀이터로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

공영주차장은 안내표시가 잘 되어 있지 않아 겨우 찾은 주차장은 휴일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닫혀 있었다. 절에서 나오는 사람은 더러 보였지만 입장하는 사람은 남편과 나 둘 뿐이다. 저녁 무렵에 산사를 찾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매표소 스님이 경로우대자라고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불전으로 올리리라 마음먹고 일주문을 들어섰다. 주차 문제로 불편했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사찰 진입로에 나무들이 사열하여 우릴 맞아주어서 마음이 편해졌나보다.

둘레가 3m, 수고가 20m, 수령이 200~250년 된 소나무 노거수가 일주문과 함께 절을 지키고 있다. 세상풍파 다 이겨내고 의연히 서 있는 나무 앞에 서니 자신이 너무나 미약한 존재로 여겨진다. 아름드리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서어나무들 사이로 ‘나무사잇길’ 이란 걷는 길이 조성되어 산책이 즐겁다. 보도블록 대신에 관리의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흙길을 만들었다면 더 좋았으리라.

▲ 석가사리탑 양옆으로 조롱조롱 이름표가 달린 연등이 줄지어 있다.

나무들은 연둣빛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청신한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마다 하늘거리는 옷자락 사이로 나무의 속살이 비친다. 옥빛 물 흐르는 소리에 마음이 청정해진다. 문득 그 옛날 행락철에 계곡을 빽빽하게 매웠던 군상들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그들은 신성한 절이라는 것도 아랑곳 않고 음주에다 전축소리에 맞춰 치마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른 채 춤을 추지 않았던가.

20여분 걸어서 반야교를 넘으니 계곡을 침대삼아 지어진 누각, 침계루(枕溪樓)가 앞을 막는다. 침계루 밑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사바세계와 단절된 느낌이다. 대웅전 앞의 3층 석가사리탑은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3년 인홍스님이 복원한 것이란다. 이 탑에는 스리랑카 사타티싸 스님이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1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 돌수조(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제4호).

탑 앞에 예쁜 돌 수조가 예사롭지 않다. 우선 맑고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 다음 안내판을 살펴보니 이 수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2.7m, 너비 1m, 높이 0.9m로 규모가 큰 편이다. 절에서 사용되는 수조는 일반적으로 직사각형이지만 이 수조는 모서리의 안과 밖을 둥글게 다듬어서 조형미를 돋보이게 했단다.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울산광역시 유형문화제 제5호)은 원래 대웅전 앞에 있었는데 3층 석가사리탑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현재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양식을 따르는 이 탑은 높이 2.5m로 단정하고 소담하여 정감이 간다. 극락전의 산신도와 독성도(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3, 34호)도 석남사의 자랑거리다.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불화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대웅전 뒤편 죽담으로 가니 길이가 6.3m나 되는 커다란 구유가 놓여 있다. 여러 대중스님의 공양을 지을 때 쌀을 씻어 담아두거나 밥을 퍼 담아 두던 것이다. 엄나무로 만들었으며 약 500년 전에 인근 간월사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석조여래좌상만 남기고 폐사된 간월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흥미롭다.

보물 제369호인 승탑을 만나기 위해 대웅전 후면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니 갖가지 꽃들이 진한 향기를 뿜어낸다. 비구니 도량이라서 그런지 경내가 아기자기하고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다. 석남사 승탑은 높이가 3.53m에 이르는 팔각 원당형태로 통일신라 말기 승탑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도의국사의 사리탑이라고 전하지만 최근에는 낭공대사의 탑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석남사에서 문화재 가치가 가장 높은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 석남사 계곡의 반석.

절을 나오려고 하는데 범종각에서 저녁 종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놀라서 물으니 저녁예불이 6시30분에 시작되며, 그 전에 33천세계를 제도하는 종을 울린단다. 예불을 어떻게 드리는지 보고 싶어서 얼른 법당으로 갔다.

여덟 분의 스님이 100여분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예를 다하여 108배를 한 뒤, 신중단을 향해서 반야심경을 암송하고 예불이 끝났다. 좋은 경험이었다.

▲ 이선옥 수필가·전 문화관광해설사

절 마당에 나오니 조롱조롱 달린 연등에 소원을 비는 이들의 이름표가 펄럭였다.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리라. 침계루의 출입문은 이미 빗장이 걸려있다. 여승들만의 공간이라 보안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듯 했다.

스님이 따라 나오셔서 육중한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다음에는 일찍 방문해달라는 경고조의 부탁을 하면서. 어둠이 내리는 산사는 고즈넉하다.

계곡 물소리가 더욱 크고 아름답게 들리는가하면 밤새소리도 마찬가지다. 영혼을 맑히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서 행복했다. 이선옥 수필가·전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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