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울산정치사’ (91)심완구와 문재인 대통령

▲ 심완구 후보는 11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이후 12~13대 총선에서 당선되었을 뿐 아니라 민선시장도 두 번이나 지내 관운이 좋은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다. 울산광역시 승격 20주년을 앞두고 최근 울산을 방문한 심 전 시장(좌)이 중구문화원에서 박문태 울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 회장을 상대로 광역시 승격 당시 자신의 활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심완구 전 울산시장
퇴임 직전 뇌물죄로 구속
암환자로 수감생활 고초겪어

생명 잃을까 걱정한 동문·가족
송철호 전 위원장에 구명 요청
송 위원장도 석방운동 도와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도움으로
2년3개월여 실형살다 사면 출감
심, 문 대통령 대선 지원군 자처

11대 총선은 전두환 정권이 이끄는 군부세력이 중심이 되어 선거가 치러졌다. 과거와 달리 두 명의 국회의원을 뽑은 이 선거에서 울산에서는 근로농민당의 이규정 후보와 민정당의 고원준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 선거의 가장 큰 이변은 민한당 심완구 후보의 낙선이다. 정치경력이나 야당 맥으로 볼 때 심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두주자였지만 3등을 하고 말았다.

당시 울산사람들은 심 후보의 낙선을 두고 “건장한 몸을 가졌던 심 후보가 소아마비 선수들과 뛰어 발목을 잡힌 꼴이었다”고 말했다. 심 후보가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진 요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지만 이번 장에서는 대다수 울산시민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심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의 관계부터 얘기 하자.

많은 울산 시민들은 18대와 19대 대선에서 심완구 전 시장이 더불어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를 도운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심 전 시장이 걸어온 정치적 발자취를 보면 그가 더불어 민주당 후보를 도운 자체가 의문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18대 대선 때는 새누리당 울산선거대책위원회가 심 전 시장의 문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비난했고 선거가 끝난 후에는 울산상공회의소가 매년 개최하는 출향인사 골프 대회에 심 전 시장을 초청하는 문제를 놓고 지역 인사들 사이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울산의 이런 분위기를 알았던 심 전 시장이 대선 때마다 문재인 후보를 도와야 했던 이유를 아는 울산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문 대통령과 심 전 시장의 관계는 심 전 시장이 시장 직에서 물러나 옥중 생활을 하면서 시작된다. 1995년 민선시장으로 출발했던 심 전 시장은 2002년까지 울산시장을 지냈으나 퇴임 직전 뇌물죄로 검찰소환을 받아 구속되었다. 그러나 그는 구속 오래 전 육종암과 폐암 판정을 받아 구속 후 형 집행정지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검찰이 형 집행정지 취소와 함께 다시 수감을 시켰다. 심 전 시장에 대한 구명 운동이 벌어진 것이 이 때부터다. 처음 구명운동을 벌인 사람들은 울산출신 부산고 동문들이었다. 정운모 ㈜태영 부회장을 비롯한 동창들은 노무현 정권 아래서 심 전 시장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송철호 변호사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당시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이었던 송 변호사를 찾았다.

“당시만 해도 저는 정 부회장을 잘 몰라 왜 그가 나를 찾아 왔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정 부회장은 심 전 시장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가 옥중 생활을 계속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면서 저에게 검찰 총장을 만나 선처를 부탁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이 일은 제 힘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송 변호사의 마음에 변화가 온 것은 며칠 뒤 심 전 시장의 부인 함정원 여사를 만나면서다. 정 부회장 방문 후 함 여사는 거의 매일 국민고충처리위원장 사무실로 와 송 변호사에게 남편의 석방을 도와 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해 송 변호사가 심 전 시장의 석방운동을 벌이게 되는데 이때 문재인 대통령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노무현 정부 아래서 민정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었다.

송 변호사가 이처럼 어려운 문제를 두고 문 대통령을 찾은 것은 각별한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80년대 후반 울산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날 때부터 인권 변호사로 활동을 같이 했다. 노사분규로 울산 근로자들이 구속되면 일차적으로 송 변호사가 변론을 맡았지만 항소심은 부산에서 문 대통령이 변론을 했기 때문에 둘은 이때부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송 변호사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권유 때문이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노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인권운동은 변호사보다 국회의원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서 부산·경남 지역 인권변호사들 중 정치 지망생을 추천 해 줄 것을 요망했다. 이 때 문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추천한 인물이 송 변호사였다.

노무현 정부시절 송 변호사를 고충처리위원장으로 노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도 문 대통령이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송 변호사가 울산 KTX 역사 건립과 UNIST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시만 해도 송 변호사는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이 되기 전이라 뚜렷한 직함이 없어 정부의 중앙부서장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 때 민정수석으로 있었던 문 대통령이 직접 관련부서장들에게 송 변호사의 활동을 도와줄 것을 요청해 놓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노 정부시절 노 대통령과 문 대통령, 송 변호사의 신뢰가 얼마나 돈독했나 하는 것은 노 대통령의 울산 순시에서 알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울산에 와 시청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대담을 가졌다. 이 때 울산시민들이 KTX 역사 건립과 UNIST 설립 문제를 간곡히 요청하자 노 대통령은 “이 문제는 나중에 나와 절친한 송철호 변호사를 통해 통보하면 심사숙고해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힘쓰겠다”는 말을 한데서 알 수 있다.

송 변호사가 심 전 시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처음 만났던 인물이 김종빈 검찰총장이었다. 왜냐하면 처음 송 변호사는 심 전 시장의 형 집행정지를 취소해 줄 것을 요청 할 계획이었고 이 권한이 검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뒤 김 총장은 심 전 시장의 건강문제에 대해 의사소견서를 받은 결과 암 진행이 멎은 상태에 있어 형 집행 정지가 어렵다는 답변을 해와 일이 무산되었다.

다음 만난 사람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었다. 천 장관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가 끝났을 때 만났다. 이 자리에서 송 변호사는 심 시장이 폐암 외에도 육종암과 설암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다면서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경우 노 정부의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선처를 당부했다. 천 장관 역시 며칠 뒤 검찰의 기록물을 검토한 결과 형 집행정지와 특별사면이 어렵다는 답변을 해왔다.

이렇게 되자 송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송 변호사는 문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역시 “뇌물죄로 기소된 정치인에 대해서는 노 정부가 원칙적으로 사면을 하지 않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면이 어렵다”고 말했다. 대신 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노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후 오래지 않아 문 대통령이 송 변호사에게 노 대통령과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두었다는 연락을 해왔다. 얼마 뒤 송 변호사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점심을 함께 하면서 심 전 시장의 사면을 부탁했다. 한 시간 동안 지속된 이 모임의 내용은 사회수석이 동석해 모두 기록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사면에 대한 확실한 약속은 않고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는 얘기만 했는데 심 전 시장은 2년 3개월 가량 실형을 살다가 2007년 2월 사면으로 출감했고 지금까지도 심 전 시장이 문 대통령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심 전 시장은 출옥 후에도 <그래도 그를 용서해야 하나>라는 책자를 발간하는 등 지금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문 대통령과 송 변호사의 관계는 노무현 정부를 떠난 후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송 변호사의 당선을 위해 울산에 직접 와 민주당 후보의 사퇴를 종용하는 등 힘썼다. 송 후보 낙선 후에도 둘의 관계는 지속되어 문 대통령이 양산 집에서 울산으로 여러 번 와 송 후보의 낙선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이 울산에 왔을 때 송 변호사와 자주 만났던 음식점이 울산구치소 뒤 ‘벚나무 집’이었다.

문 대통령과 송 변호사가 이 집을 자주 드나든 것은 둘 모두 천주교 신자로 이 음식점 주인 이 레지나씨가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이씨는 현재 옥동성당을 다니고 있다.

문 대통령의 세례명이 ‘디모데오’라고 말하는 이씨는 “문 대통령이 우리 집에 오면 땅콩으로 만든 반찬을 좋아해 내어놓았지만 치아가 좋지 않아 드시지 못해 안타까웠다”면서 “문 대통령이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송 변호사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전 경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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