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최초 다문화가정 출신 기초의원 오세라 중구의원

▲ 울산 최초 다문화가정 출신 기초의원 오세라 중구의원

키르기스스탄 이슥쿨주가 고향
지리교사·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다
2002년 영어열풍 소식에 한국행

지인 소개로 한국인 남편 만나
울산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
“年5~6회 제사…음식 못해 눈물도”

2014년 민주연합 비례 후보 2번
최근 1번 하경숙 의원 탈당으로
의원직 승계받아 중구의회 입성
“지역 다문화 가정에 도움 주고파”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어딜 가나 높은 산이 펼쳐져 있는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다.

수도 비슈케크에서 남동쪽으로 140㎞ 떨어진 이슥쿨호의 서쪽 연안에 자리한 이슥쿨주 카라콜시에서 그녀는 태어났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이슥쿨 호수는 제주도 4배 크기다.

카라콜시에서 초·중·고교를 마쳤고 대학도 이곳에 있는 트느스다노바를 졸업했다. 그녀의 원래 꿈은 의사였다.

울산 최초 다문화 기초의원인 오세라(여·50) 중구의원의 이야기다.

그녀는 어머니가 학생때 결혼하는 바람에 어릴때부터 할머니 손에 컸다. 아버지는 화가였지만 그녀가 초등학교 4학년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가정 형편이 좋았던 할머니 손에서 한국에 올때까지 보살핌을 받았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카라콜시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지리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로 자리를 옮겨 러시아 어린이집에서 키르기스스탄어와 영어를 가르쳤다. 비슈케크가 수도여서 마땅한 교사 자리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2년 영어교육 열풍이 불면서 그녀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아는 동생들이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한국에서 영어교사를 꿈꿨다. 2002년 8월13일 비오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오 의원은 “버스에 앉아 밖을 보니 논과 밭이 많이 보여서 TV에서 보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 사실 겁이 났다”고 회상했다.

구리시와 창원시에 잠깐 머물며 한국을 여행하던 그녀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세살 연상 남편을 만났다. 타국 땅에서 사랑에 빠진 그녀는 만난지 3개월만에 남편이 일하는 울산으로 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한국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언어가 달랐고, 문화도 달랐다.

오 의원은 “1년에 5~6번 정도 제사가 있었다. 음식을 잘못 만들어 시어머니에게 혼나기 일쑤였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2년 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아이들이 크면서 그녀도 방과후교사 자격증을 따서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어린이집 영어강사, 초등학교 이중언어강사로 일했다. 지역 다문화센터에서도 키르기스스탄 대표를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통역 등 봉사활동도 함께 했다.

다문화가정 이주여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오씨는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2번을 받아 기초의원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당시 비례대표 후보 1번을 받았던 중구의회 더불어민주당 하경숙 의원이 최근 탈당하면서 비례대표 2번이었던 오씨가 의원직을 승계해 중구의회에 입성했다.

오 의원은 “결혼 이주여성으로 한국에 살면서 언어와 문화적 차이, 아이들 교육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떻게 하면 다문화 가족과 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줄까 고민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싶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또 “우리 아이들도 학교 들어가기 3개월전까지 읽고 쓰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한국말이 부족해서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많이 봤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문화가정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오 의원. 원래 이름이 ‘오스모노바라이사스르가코브나’였던 오 의원은 성은 ‘오’씨로 이름은 순 한글인 ‘세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봉출기자 kbc78@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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