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 된 들개떼…소·닭 닥치는대로 습격, 등산객도 위협

▲ 유기견.

충북 옥천군은 최근 열린 시장·군수협의회에서 들개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달라는 건의문을 냈다.

‘맹수’가 돼 가축을 마구 잡아먹는 들개의 만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으니 총기(엽총)를 이용해서 포획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 건의문은 시장·군수들의 공감을 얻었고, 협의회 이름으로 환경부에 전달될 예정이다.

주인의 손을 떠나 야생에 적응한 들개가 국민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 ‘야생의 폭군’ 들개떼, 가축 습격 잇따라

지난 14일 옥천군 옥천읍 서정리 농가 2곳에 들개가 침입해 토종닭과 오골계 27마리를 잡아먹거나 물어 죽였다. 한밤 중 닭장 그물망을 찢고 들어가 순식간에 난장판을 만든 것이다.

마을 입구의 방범용 CCTV에는 들개 2마리가 퍼덕거리는 닭을 물고 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이후에도 이 마을에는 ‘동일범’ 소행으로 보이는 닭 습격이 꼬리를 물면서 주민들은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난 2월22일 이곳에서 멀지 않은 옥천군 군서면 오동리 한우농장에도 들개 3마리가 나타나 10개월 된 송아지 1마리를 물어 죽였다. 희생된 송아지는 체중 250㎏ 나가는 큰 제법 큰 몸집에도 맹수로 돌변한 들개떼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했다.

2년 전에는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에 들개떼가 출현해 염소 35마리를 물어 죽인 일도 있다.

주민들은 덩치 큰 소까지 거꾸러트린 들개떼가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불안해 하고 있다.

옥천군과 119구조대는 들개 출몰 현장에서 대대적인 포획작전을 펼쳤지만,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들개를 붙잡는데 실패했다.

수면제를 넣은 음식물을 이용해 한우농장에서 강아지를 포함한 들개 4마리를 포획한 게 전부다.

옥천소방서 박운갑 예방안전팀장은 “야생화된 개는 워낙 민첩하고 경계심이 강해 포획틀 주변에는 얼씬조차 않는다”며 “사람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아 유효 사거리 30∼40m인 마취총으로는 도저히 붙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들개 때문에 골치 앓는 곳은 전국에 수두룩하다.

서울에만 140마리의 들개가 북한산·인왕산·관악산 주변에 무리 지어 생활하면서 등산객을 위협하거나 먹이를 찾아 주택가를 어슬렁거린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 산간지역도 멧돼지와 더불어 들개 무리가 활개 치고 다니면서 가축이나 사람을 위협한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들개는 멧돼지보다도 활동반경이 훨씬 넓어 개체 수나 서식실태조차 파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전에서도 지난 3월 들개떼가 토종닭 농장을 습격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미처 농장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들개 2마리를 붙잡아 동물보호센터에 인계했다.

◇ “사람 해칠라…더 이상 방치하면 안 돼”

들개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유기견이 야생에 적응에 생활하는 경우를 말한다. 먹이 경쟁을 벌이면서 늑대와 같은 공격성 갖게 되기도 한다.

민원의 대상이 되는 들개는 대부분 ‘백구’나 ‘누렁이’로 불리던 대형견이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데다 덩치가 커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전 야생동물 구조관리센터의 오제영 수의사는 “개의 조상은 이리나 자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 손에서 벗어나 생활하다 보면 어느 정도 야생성을 회복한다”며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을 적지만, 약자라고 판단되는 노인이나 어린이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는 야생에 적응했더라도 동물보호법의 보호를 받는다. 함부로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를 가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설치류나 조류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먹어 유해동물 취급을 받는 들고양이와는 확연하게 대조된다.

환경부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들고양이를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 덫(트랩)과 더불어 총기포획을 허용하고 있다.

옥천군 관계자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는 들고양이는 시·군에서 포획계획을 수립한 뒤 총기포획이 가능하지만, 개는 여전히 구조하고 보호할 대상”이라며 “법에는 들개라는 용어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개 유기견 하면 치와와나 푸들 같은 작고 귀여운 것을 떠올리는데, 덩치 크고 사나운 개도 많다”며 “이런 경우 반려동물이라기보다는 가축을 잡아먹는 유해동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동물보호단체 “말도 안 되는 발상…유기부터 막아야”

들개를 유해 야생동물에 포함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 환경부는 난색을 보인다. 가축 등을 공격했다고 해서 멧돼지·고라니처럼 생태계 교란동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총기포획이 허용된 들고양이도 포획협의회가 현지조사를 거친 뒤 포획 범위와 방법 등을 결정하고 있어 실제로 총기포획이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며 “요즘은 중성화(TNR·Trap-Neuter-Return)를 통해 공존을 모색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동물보호단체 역시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발끈했다. 반려동물 유기가 근절되지 않는 상황에서 떠돌이 개를 붙잡겠다는 발상 자체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아무리 야생화됐더라도 개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총으로 쏴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며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절대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는 대형마트에서 장난감처럼 반려동물을 사고파는 유일한 나라”라며 “책임감 있는 입양을 통해 유기동물을 막는 게 급하고, 야생화된 개로 인한 피해가 잦은 곳에서는 경계심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초대형 포획틀을 사용하는 방법 등이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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