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세상 변변한 재주 없어도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정직·원칙으로
타당성 있는 삶, 아이들에 보여주겠다

▲ 김종국 서울도시철도공사 고객서비스본부장(직무대행)

어릴 적 기억으로 우리 집에는 가훈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가훈을 발표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집안에 걸려있는 것이 없어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당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고 계시던 선친께서는 그냥 웃으시며 ‘정직’이라고 일러주셨다. 세월이 흘러 우리 아이들도 그와 같은 숙제를 받아왔는지 “아빠, 우리 집 가훈을 무엇으로 정할까요?”라고 묻는다. 나 또한 ‘정직’이라고 일러주면서도 미리 가훈을 정해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사실 우리 형제들은 가훈을 집안에 걸어두지 않았어도 정직하고 예의바르게 살아왔으며 모두가 모범생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써서 보여주는 훈(訓)이 아니라 부모님의 행동을 그대로 본받은 덕분으로 생각하며 늘 존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부모로서 바른 행동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좌우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때 ‘승리를 훔치지 않는 정신’이라 정하고는 지금까지 늘 ‘잘 지킬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하면서 살아왔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시인이었던 큰 형은 ‘절약하되 인색하지 않으며 공손하되 비굴하지 않기’라는 글귀를 늘 시작(詩作)노트에 간직했는데 이 글귀 또한 늘 마음에 두고는 있지만 실천에는 아직도 모자람이 많은듯하다.

가계에 있어서도 풍요로운 지원과 아이들의 앞날을 위한 넉넉한 투자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았으니 가장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좋아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공감해준 아이들을 의젓하게 생각하면서도 물려받은 유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물려 줄 유산이 없는 것이 능력없는 가장의 오랜 걱정이었다. 다행히 식구들이 지나친 욕심이나 더 큰 것을 바라지 않고 각 자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여러 차례의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 척추분리증으로 3급 판정을 받고 늦은 나이에 현역으로 입영을 한 아들이 그 유명하다는 ‘백골부대 전사’가 되어 휴가를 다녀갔다. 요즘은 병영 생활이 예전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고 규칙적인 생활로 더욱 건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아픈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심정을 아들은 정말 모를까. 수시로 군 병원과 외래 진료를 받으며 군 생활을 하는 것이 힘이 들겠지만 늠름한 모습으로 부대로 복귀하는 아들의 뒷모습이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아들아, 아버지의 허리디스크를 대물림 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조치를 취해주겠다’는 육군본부 출신 삼촌의 말을 믿고 30개월을 기다리다가 제대한 아버지의 군 경험담을 참고하기 바란다.

요즘 뉴스를 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할 기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많고 설마 하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 논쟁이 되고 있다. 재산과 병역, 논문과 세금 등에 관한 일들이다. 변화 무쌍한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눈치도 있고 재주를 부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아직 그런 재주가 부족하니 앞날이 더욱 걱정된다. 이재에도 밝고 든든한 배경을 가지면 세상살이가 쉬워질 듯도 한데 그러지 못하니 지금까지 해 온대로 정직하고 원칙대로 살아야겠다. 명분과 타당성이 있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재산 보다는 ‘정직’을, 처세보다는 원칙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돌아가신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바르게 보여 줄 것을 다짐해 본다.

김종국 서울도시철도공사 고객서비스본부장(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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