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5대원칙 논란에 휩싸인 문대통령
원칙과 실제적용의 한계 이해는 하지만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선 원칙 지켜져야

▲ 이태철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자 인사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상식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한 첫단계로 야당에서조차 깜짝 놀랄만한 파격인사를 감행했지만 스스로 정한 5대 원칙에 어긋난 인선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을 시인한 국무총리 후보자와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 공직후보자 3명이 ‘병역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이른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공직배제 5대 원칙’ 대상자였던 것이다. 거주지를 실제로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 주소만 바꾸는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의 자질과 업무능력, 도덕성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의 단골메뉴로,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사퇴압박과 함께 대통령의 직접 해명까지 요구하면서 날을 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29일 5대 인선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며 “야당 의원들과 국민께 양해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비서실장을 통해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현실적인 제약 안에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토로한 것과 “어쩔 수 없는 주민등록법 위반 사안이라면 위장전입이란 정치적 용어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사회적으로 기준안을 새로 마련해보자”는 취지의 설명까지 곁들인 것과 맥락이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동안 위장전입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여당일 땐 ‘문제 없다’고 변호하다가 야당이 되면 ‘낙마 사유’라며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또 이낙연 총리 후보자 등에게서 불거진 위장전입이 실정법을 위반하기는 했으나 부동산 투기 또는 이른바 자녀의 강남학군 진학 등을 위한 악성이 아니란 점에서 ‘그 정도 흠집은 뭐~’라며 눈감아 줄 수 있다. 하루빨리 국정공백을 메우고 눈 앞에 산재해 있는 현안 해결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조바심과도 맞닿아 있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 보내는 국민적 애정에 기댄다면 ‘국민 눈높이’를 조금 낮춘다고 해도 무엇이 문제되겠는가.

그렇지만 걱정이 있다. 국민 누구나 지켜야 마땅한 수준의 ‘공직배제 5대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재가 고위공직 몇자리 채우지 못할 정도로 빈약한 것이 국가적 현실이다. 법준수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 사회에서 도대체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어떻게 살아왔길래 ‘그때 그때마다 다른 기준’을 내세워야 하는지 한숨이 나온다.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원칙이 중요하다.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라면 정의와 상식은 당연히 따라오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원칙과 정의가 처음부터 살아있기 때문이다. 현실론을 내세운 ‘다른 기준’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참으로 궁금해 진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방영된 ‘전설의’ 개그 코너 ‘그때그때 달라요’가 떠 오른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머리에 해바라기 꽃을 단 영어강사 컨셉의 ‘미친소’가 영어 문장을 엉터리로 해석, 많은 사람들을 웃겼다. 예를들면 ‘I wish a happy new year’라는 문장을 ‘아이(I)가 자기성이 위씨여(wish a)라고 해피(happy)라는 개에게 말하는데 그 개는 누워(new year)있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식이다. “지금부터 저의 해석에 대해서 절대로 충격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거죠?” “그건 그때그때 달라요” “쌩뚱맞죠~” 등의 대사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새로운 소재를 발판삼아 부활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태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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